여우군단 ‘신데렐라 동화’ 주인공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4일 03시 00분


레스터시티, 창단 132년만에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
라니에리 감독의 ‘아버지 리더십’… 최약체 평가 깨고 0.02% 기적
바디-캉테, 명문구단서 뜨거운 구애… 마흐레즈 이적료 414억원까지 껑충
도박업체 배당금액도 120억원 돌파

라니에리 감독
라니에리 감독
1884년 창단 이후 132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1부 리그) 첫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제이미 바디의 집에 모여 있던 레스터시티 선수들은 환호했다. 팬 수백 명도 바디의 집으로 몰려와 응원가를 불렀다.

‘여우 군단’(레스터시티의 애칭)이 마침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2015∼2016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강등 후보로 꼽혔던 레스터시티가 우승을 확정한 3일 잉글랜드 중부에 위치한 인구 30만 명의 작은 도시 레스터는 광란의 파티장이 됐다. 관공서와 시내 상점마다 레스터시티의 엠블럼이 그려진 깃발이 펄럭였고, 레스터시티의 안방인 킹파워 스타디움에 모인 팬들은 영국 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을 밤새도록 불렀다. 레스터시티의 구단주 비차이 스리바다나쁘라바의 나라인 태국과 공격수 오카자키 신지의 모국인 일본에서도 레스터시티의 우승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 0.02%의 기적

선수들도 우승 축하 파티 EPL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시티 선수들이 영국 멜턴 모브레이에 있는 제이미 바디(앞줄 오른쪽)의 집에 모여 우승 축하 파티를 하고 있다. 바디는 “레스터시티 역사상 가장 큰 영광을 팀의 일원으로 누리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레스터시티 홈페이지 캡처
선수들도 우승 축하 파티 EPL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시티 선수들이 영국 멜턴 모브레이에 있는 제이미 바디(앞줄 오른쪽)의 집에 모여 우승 축하 파티를 하고 있다. 바디는 “레스터시티 역사상 가장 큰 영광을 팀의 일원으로 누리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레스터시티 홈페이지 캡처
시즌 개막 전 도박업체들이 책정한 레스터시티의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0.02%)이었다. 그러나 EPL 승격 후 두 번째 시즌을 맞은 레스터시티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 리더십’과 함께 바디(22골)와 리야드 마흐레즈(17골) 등의 기량이 성장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팀이 패배한 뒤 선수들에게 휴가를 주거나, 승리 후 ‘피자 회식’을 하는 등 무명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는 “성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나는 실용적으로 경기를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레스터시티의 우승은 살아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발견하거나, 스코틀랜드 네스 호의 괴물을 발견한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우승의 영광은 팬들에게도 돌아갔다. 영국의 일간지 미러에 따르면 개막 전 레스터시티의 우승에 2파운드(약 3300원)를 베팅했던 카리스마 카푸어 씨는 1만 파운드(약 1678만 원)를 받게 됐다. 카푸어 씨는 “평생 레스터시티를 응원해 왔다. 도박업체 래드브로크스에서 시즌 막바지에 정산을 제안했지만 레스터시티의 우승을 확신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최고액을 받게 될 팬의 배당금은 10만 파운드(약 1억6789만 원)에 달하며, 래드브로크스 등 도박업체들이 지급해야 할 돈은 12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CNN에 따르면 블룸버그 편집장 존 미클스웨이트는 20년간 레스터시티의 우승에 돈을 걸어오다 이번 시즌에는 베팅을 하지 않아 행운을 놓쳤다.

○ 레스터시티가 꿈꾸는 ‘장편 동화’


레스터시티는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다. 레스터시티가 EPL 왕좌를 지키면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려면 주축 멤버들을 붙잡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뽑힌 마흐레즈는 이미 FC바르셀로나(스페인) 등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14년 레스터시티로 옮길 당시 40만 파운드(약 6억6350만 원)였던 그의 이적료는 현재 2500만 파운드(약 414억 원)까지 치솟았다. 바디와 은골로 캉테도 첼시 등의 구애를 받고 있다. 레스터시티 주전 선수들의 이적료는 총 401억 원으로 손흥민(토트넘)의 이적료와 비슷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승을 통해 레스터시티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는 것. AFP통신에 따르면 레스터시티는 중계권 수익, 입장권 수익 등을 합쳐 2500억 원을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 치열했던 ‘장외 신경전’


바디는 EPL에서 득점왕을 놓고 경쟁 중인 해리 케인(토트넘)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신경전을 펼쳤다. 포문을 연 쪽은 케인이었다. 그는 지난달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자들이 늠름하게 걸어가는 사진을 올렸다. 남은 경기에서 승점을 쌓아 역전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5골을 터뜨려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케인은 3일 첼시전에서도 골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했지만 팀이 무승부에 그쳐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자 득점 3위인 바디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에서 사자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진과 함께 ‘…’(할 말이 없다는 뜻)이라고 올렸다. ‘새끼 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케인이 우승에 실패했음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삼사자 군단’인 잉글랜드 대표팀에 나란히 승선해 주전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레스터시티#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우승#라니에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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