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계산보다는 모험이 빚어낸 월드컵 첫 우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30일 03시 00분


외국 중고 빌려타며 맨손 도전 4년!
세계 정상 우뚝 선 한국 썰매의 기적
꿈을 꾸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새 역사는 없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이달 23일 캐나다에서 짜릿한 소식이 들려왔다. 국제봅슬레이스켈리턴연맹(IBSF)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원윤종 서영우 선수가 남자 2인승 경기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이번 금메달이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딴 것이라고 하니 더욱 놀랍다. 사실 봅슬레이가 우리에게는 그다지 대중적으로 알려지거나 크게 인기 있는 종목은 아니다. 열악한 차원이라는 평가도 과분할 정도로 국내의 제반 여건이 아직은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다. 경기장도 없다. 장비가 없어 외국 선수들이 타던 중고 장비를 구입해 연습을 했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 선수들의 썰매를 빌려 타며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2013년에야 네덜란드 ‘유로테크’ 썰매를 처음 구입해 대회에 출전해 왔다고 한다. 두 선수가 호흡을 맞춘 것도 불과 4년밖에 안 되었다.

서 선수는 말한다. “다른 나라는 이렇게 대회가 연달아 열리면 뒤에서 썰매를 미는 역할을 하는 선수를 바꾸어 가면서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체 선수가 없어서 허리가 안 좋은데도 뛰었다.” 이 대목에서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벌써 세계 랭킹 1위이다. 전후좌우의 조건들을 눈대중으로 따져보고, 이리저리 계산해보는 것으로는 절대 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반년 전에 저세상으로 떠나신 내 어머니는 배움은 없으셨어도 재치가 넘치셔서 경험으로만 빚어낸 몇 조각의 지혜를 불쑥 내어주기도 하셨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을 때이다. 친구들하고 장난치고 놀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던 내게 어머니께서 집 앞에 있는 밭에서 마늘을 뽑자고 하셨다. 나에게는 감당이 안 되는 넓은 밭이었다. 깜짝 놀라서 “은제 이 많은 마늘을 다 뽑는당가?”라고 하면서 싫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해도 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또 몸을 써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잘하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아랑곳하지도 않고 먼저 마늘을 뽑으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눈은 게을르제만 손발은 부지런헌 것이다.” 꼼짝없이 어머니 옆에 붙어서 마늘을 뽑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였던 그 많던 마늘을 반나절 만에 다 뽑게 되었다. 눈대중으로는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았던 일을 묵묵히 손발을 움직이다 보니까 어느새 해낸 것이다.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 눈은 정말 게으르고, 손발은 부지런했다.

눈대중이나 계산속에 빠져서는 도약 같은 것은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한다. 주변 조건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들은 대개 자신의 어려움을 주변 조건과 남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이런 태도로는 미래를 기약하지 못한다. 더 나아질 수가 없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현재를 밀고 나아가 아직은 분명한 모습으로 정해지지 않은 어떤 곳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런데 다가올 미래는 미래의 문법으로 따져야 하겠지만 미래의 문법은 아직 충분히 숙성되지 않아서 미래를 보는 일마저도 현재의 문법으로 계산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숙성된 미래의 문법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때, 충동적인 누군가는 비문법적 행동으로 새로운 곳을 향하여 건너뛰려 덤비게 된다. 이것을 보통은 무모함이라 말하고 모험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무모함이나 모험은 분명히 미래를 향한 행위들이다. 이런 무모한 실천과 행동이 없이 그저 눈대중이나 계산속으로 나온 판단에만 의존해서 이 궁리 저 궁리에 빠져 있거나 갑론을박하는 논쟁에만 빠져 있으면 현재는 급격히 부식된다.

어떤 계산으로도 봅슬레이 우승은 점쳐질 수 없다. 내가 반나절 만에 그 많은 마늘을 다 뽑는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나 현재를 돌파하는 일은 눈대중이나 계산을 벗어나는 일이다. 바로 꿈이다. 문제는 꿈을 꾸느냐, 안 꾸느냐이다. 꿈을 꾸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꿈을 향해 무모함을 감당하느냐, 감당하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결국은 손발을 움직이는 일이다. 행동이다. 무모함을 통과하지 않고 빚어진 새로운 역사는 없다. 모험, 즉 위험을 뒤집어쓰지 않고 강을 건널 수는 없다. 미래가 벌써 암울하게 느껴지는가. 혹시 겁을 먹고 있지는 않은가. 봅슬레이의 꿈과 마늘밭의 손발이 진리다. 썰매도 경기장도 없던 한국의 봅슬레이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우뚝 섰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봅슬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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