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하준호 “타자 전향 3년째…내 꿈은 최다안타왕”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월 25일 05시 45분


kt 하준호가 24일 전지훈련지인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서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준호는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고 밝혔다.투산(미 애리조나주)|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kt 하준호가 24일 전지훈련지인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서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준호는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고 밝혔다.투산(미 애리조나주)|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 kt 하준호

고교야구 평정했던 ‘황금의 왼팔’
공 치는게 더 즐거워 타자로 변신
작년 80경기 타율 0.258·6홈런
“외야경쟁 치열…경기 출전이 우선”


2007년 고교야구에는 혜성처럼 특급 좌완투수가 등장했다. 제62회 청룡기대회에서 이 투수는 결승까지 4경기 동안 30이닝을 던지며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다. 2차례나 완봉승을 거뒀고, 결승전에선 무려 17개의 삼진을 잡았다. 고교 3학년이었지만, 좌완투수로 프로 수준에 근접하는 시속 148km의 빠른 직구에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까지 구사하며 고교야구를 평정했다. ‘황금의 왼팔’을 가진 이 투수는 큰 기대 속에 프로에 입단했다.

2016년 1월. 9년 전의 그 투수는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의 키노 스포츠 콤플렉스에 차려진 kt의 스프링캠프에서 쉼 없이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8시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 속에서 가장 많이 뛰고, 가장 많이 웃는 주인공은 하준호(27)다.

24일(한국시간) 포수를 제외한 kt 야수진 전체는 그라운드에 4명씩 한 조를 이뤄 누가 빨리 릴레이 송구를 끝내는지 미니게임을 했다. 1등부터 4등까지 다음 훈련의 강도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선수들은 승부욕에 불탔다. 공은 몇 차례 1번부터 4번 선수까지 왔다 갔다 했고, 점점 각 조에서 공이 머무는 순서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1위는 강한 어깨를 자랑하는 하준호가 속한 조가 차지했다. 끝내기 승리를 거둔 직후처럼 큰 환호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선수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하준호가 있었다.

-팀 야수 중 연봉고과 1위를 기록하고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하준호는 2015시즌 80경기에서 타율 0.258, 64안타, 6홈런, 26타점을 기록했다. kt는 경기기록과 함께 팀워크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하준호와 야수 최고인 88%의 인상률로 6000만원에 계약했다).

“(활짝 웃으며) 솔직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2할5푼을 쳤는데 연봉이 크게 올라 죄송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크게 느낀다. 많이 올랐기 때문에 올해 못하면 더 많이 깎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6000만원을 주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바로 사인했다(웃음). 지난해 (롯데에서) 트레이드됐는데, 부상으로 2개월 정도 뛰지 못했다. 그 점도 미안하고 아쉬웠다.”

-익산 마무리캠프에서도 가장 열심히 뛴 주인공으로 꼽힌다. 예전 팀(롯데)과 비교하면 훈련량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 힘들지 않나?


“다른 팀들에 비해 훈련 강도는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대부분 말한다. 그러나 주전 선수도 아니고, 아직 보여드린 것도 없다. 자리를 잡아야 한다.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주위에서 앞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부분을 의식하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리 팀에는 좋은 외야수들이 굉장히 많다(kt는 유한준, 이진영, 이대형, 하준호, 김사연 등 외야진의 경쟁이 치열하다). 경기를 뛰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롯데에서도 차세대 기대주였지만, kt로 트레이드된 뒤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이 쏟아졌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 혼자 떨어지는 등 주변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이 일이 많으셔서 워낙 바쁘시다. 수원에 혼자 살지만 더 편해진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경기를 더 많이 뛰어서 그랬는지, 평소 단 한 번도 아들 자랑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요즘에는 주위에 말씀을 많이 하신다. 사인볼도 보내라고 하시고. 그런 변화는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고교 시절 전국대회 결승전에서 삼진을 17개나 잡은 최고의 왼손투수였다. 이제 타자로 변신한지 3년째다(하준호의 타자 선발출장은 2014년 7월 27일이었다). 주위에서 기대가 크지만 투수를 계속했으면 더 편안하게 선수생활을 이어갔을 수도 있다. 후회한 적은 없나?

“공이 빨랐고 왼손이라 프로 입단 때 당연히 투수가 됐지만, 어렸을 때부터 방망이 들고 공을 때리는 게 즐거웠다. 피칭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투수도 타석에 섰기 때문에 잘 몰랐다. 투수는 작은 차이에도 매우 변화가 크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다. 공 하나 하나에 힘들어했던 것 같다. (김)재윤이 같은 경우는 포수를 보다 투수가 된 뒤 더 야구가 재미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지금은 즐겁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이제야 내게 어울리는 모습을 찾은 것 같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꼭 오르고 싶은 산이 있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최다안타 타이틀에 도전해보고 싶다. 익산에서 스윙을 간결하고 짧게 바꿨는데, 타구가 더 강해졌고 코스도 날카롭게 날아갔다. 아직 완전히 내 것이 아니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꼭 내 것으로 만들어 돌아가는 것이 큰 목표다.”

인터뷰를 마친 하준호는 다시 방망이를 잡았다. 나무배트는 노력을 배반하지 않는 대신 나태함은 허용하지 않는다. 아마추어에서 쓰는 알루미늄배트는 손목 부위에 맞아도 홈런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나무배트는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안기며 파울을 낳을 뿐이다. 하준호의 손바닥은 이미 수천 번의 스윙으로 단단해졌다. 황금의 왼팔과 바꾼 그의 나무배트는 언뜻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더 반짝이는 내일을 품고 있다.

투산(미 애리조나주)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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