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광우야, 공격수 믿어야 돼”…임도헌 감독의 한마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월 15일 05시 45분


배구는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경기다. 세터는 공격수를, 공격수는 세터를 믿어야 득점확률이 높아진다. 삼성화재 유광우(왼쪽)와 외국인선수 그로저는 1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의 홈경기에서 이를 입증했다. 스포츠동아DB
배구는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경기다. 세터는 공격수를, 공격수는 세터를 믿어야 득점확률이 높아진다. 삼성화재 유광우(왼쪽)와 외국인선수 그로저는 1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의 홈경기에서 이를 입증했다. 스포츠동아DB
컨디션 나빴던 용병 대신 속공·시간차
공격패턴 들키자 경기흐름 우리카드로
임 감독 작전타임서 “그로저 믿고 올려”


삼성화재는 13일 우리카드와 올 시즌 들어 가장 중요한 경기를 치렀다. 외국인선수 그로저가 팀을 비운 3경기 동안 목표했던 1승2패를 거뒀지만, 새 외국인선수 알렉산더를 영입한 우리카드와의 ‘2015∼2016 NH농협 V리그’ 4라운드 홈경기에서 패하면 앞으로 가시밭길이 예상됐다. 반드시 이겨야 했기에 부담이 더 컸다.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이 “이번 시즌 가장 힘든 경기였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박빙이었다. 1세트를 따냈지만 2·3세트를 내줘 우리카드전 14연승 기록도 깨질 위기였다. 삼성화재 세터 유광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때보다 고민이 많았다.

유광우의 고민과 선택

유광우에게 고민을 안긴 선수는 그로저였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유럽예선을 치르기 위해 지난달 30일 팀을 떠났던 그로저는 1월 6일부터 11일까지 독일대표로 활약했다. 폴란드와의 3·4위 결정전은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독일은 패했다. 그로저의 리우올림픽 출전도 무산됐다. 목표가 사라진 그로저는 곧바로 짐을 꾸려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12일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했다. 시차 때문에 13일 오전 3시에 깨는 등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1세트 첫 공격시도였던 백어택이 블로킹에 걸리는 등 정상이 아니었다.

유광우도 이런 사실을 잘 알았다. 그로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던 유광우는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선택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속공 시도와 시간차 공격이었다. 그로저 없이 해왔던 3경기의 패턴을 바탕으로 길을 찾았다. 첫 세트에는 유광우의 선택이 통했다. 초반 실점을 일찍 따라잡고 결국 세트를 따냈다. 2·3세트에는 흐름이 달라졌다. 우리카드가 리베로 정민수의 호수비를 바탕으로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 그로저는 여전히 흔들렸다. 평소 50%를 쉽게 넘었던 그로저의 공격점유율이 40.7%→37.9%→33.3%로 차츰 떨어졌다. 득점도 6점∼5점∼4점으로 줄었다. 4세트도 쉽게 실마리를 풀지 못하던 중에 임도헌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유광우에게 말했다. “광우야, 믿어라. 믿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경기 결과를 바꾼 중요한 한마디였다.

공격수와 세터의 믿음이 승패의 열쇠라고 믿었던 임도헌 감독

임도헌 감독은 4세트 도중 그로저에게 물었다. “만일 힘들면 안 해도 된다. 빼주겠다.” 돌아온 답은 “하겠다”였다. 그 말을 들은 뒤 임 감독이 내린 지시가 ‘믿으라’였다. 이후 유광우의 토스는 달라졌다. 어차피 팀의 에이스는 그로저였다. 지금 상태가 나쁘다고 해서 공을 주지 않는다면 회복할 방법도 없었다. 유광우의 세트가 그로저에게 집중됐다. 45%의 점유율을 찍었다. 그로저는 12득점으로 4세트 승리를 선물했다. 5세트에 그로저는 14차례 공격을 했다. 무려 93.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8득점했다. 13점 이후 승패를 가름하는 2차례 공격도 그로저의 몫이었다. 상대팀도 다 알고 대비했지만, 그로저는 유광우의 신뢰가 만든 세트를 성공시켰다.

임 감독은 “공격수와 세터는 서로를 믿어야 한다. 공격수가 세터의 공이 짧을까 길까 의심하면 공격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공격수는 무조건 우리 팀 세터가 최고의 공을 올려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점프해야 한다. 세터도 마찬가지다. 우리 공격수가 이 공을 성공시켜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올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구는 신뢰의 경기

배구를 주제로 한 일본 만화 ‘하이큐’에는 눈을 감고 때리는 작은 키의 스파이커가 나온다. 우리 팀 세터가 자신의 점프와 스윙 최적의 타점에서 공을 올려줄 것으로 믿고 눈을 감은 채 공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만화에선 이것이 더 효과를 발휘해 상대팀이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 만화의 특성상 과장되기는 했지만, 세터와 공격수의 신뢰를 잘 묘사한 부분이다.

임도헌 감독은 “블로킹과 수비도 서로를 신뢰해야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블로킹이 좋은 팀은 상대의 공격을 유효블로킹으로 잘 차단하는데, 그 덕에 수비수가 받아내기가 훨씬 편해지고 반대로 수비가 탄탄한 팀은 블로커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상대 공격수가 수비를 의식해 강하게 공격하다보면 자연히 타점이 낮아져 블로킹에 잘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블로킹과 수비는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보완관계다.

어택 커버도 신뢰가 바탕에 깔린다. 공격수에게 ‘네가 실수하더라도 우리가 너를 지켜준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어택 커버다. 어택 커버가 없으면 공격수는 반드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1점을 따기 위해 3번의 기회를 살려야 하는 배구는 코트에 있는 6명의 믿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배구는 신뢰의 경기다.

●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 꺾고 5연승

한편 현대캐피탈은 14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5∼2016 V리그’ 남자부 홈 경기에서 KB손해보험을 세트스코어 3-0(25-22 25-22 25-22)로 따돌리고 15승8패를 마크했다. 5연승을 내달리며 승점 45점으로 2위 대한항공(승점46)에 바짝 다가섰다. 현대캐피탈 오레올은 21득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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