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성 “프로에서 18년… 난 행복한 사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7월 21일 06시 40분


전북현대 최은성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상무와의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홈경기에서 자신의 떠나는 길을 축복해준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대전 시티즌과 전북을 거치며 18년간 골문을 지킨 그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수문장이었다. 전주|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전북현대 최은성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상무와의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홈경기에서 자신의 떠나는 길을 축복해준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대전 시티즌과 전북을 거치며 18년간 골문을 지킨 그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수문장이었다. 전주|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43세 GK 레전드 최은성 그라운드와 아름다운 작별

딱 10년 생각했는데 어느덧 18년
더 뛰고 싶지만 몸이 바보가 돼 있었다
젊을 땐 필드서 뛰고 싶다는 이루지 못할 꿈도
대전 떠났지만 전북이 불러줘서 행복했다
김병지 형은 GK 후배 이끌어준 마부같은 존재
2002월드컵 태극마크…난 운 좋은 사람
이제 골키퍼 코치, 새로운 꿈을 꾼다

전북, 상주전 6골 폭발…은퇴 최은성 승리로 배웅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의 큰 별이 영욕으로 점철된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제 더 이상 땀 젖은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볼 수 없다. ‘영원한 수문장’ 최은성(43·전북현대)이 정든 골키퍼(GK) 장갑을 벗었다.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 상주상무의 정규리그 16라운드는 한 선수를 위해 펼쳐졌다. 최은성을 위한 무대였다. 그가 선발 출전해 무실점으로 마친 전반 45분이 하이라이트였고, 하프타임 은퇴 행사는 또 다른 출발을 알리는 이벤트였다.

전반 17분 이동국의 첫 골 직후, 후배들은 골 세리머니 대신 하프라인에 모여 이날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는 큰 형님을 헹가래쳤다. 최은성은 웃기만 했다. 후배들의 축하 메시지 영상을 볼 때도, 양 팀 관계자와 서포터스로부터 꽃다발을 받을 때도 미소 지었다. 딱 한 번 울컥한 순간은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때. GK 장갑을 벗으며 “홀가분하다”고 외치면서도 가족에게만큼은 뭐든 미안한 평범한 가장일 뿐이었다.

대전 시티즌(챌린지·2부리그)과 전북을 거치며 18년간 그가 지켜온 골문은 든든했다. 또 한결 같은 성실함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올 시즌 전반기를 플레잉코치로 보낸 그는 이제 ‘정식 GK 코치’로 제2의 축구인생을 연다. 스포츠동아는 전북 구단이 최은성의 은퇴를 공식화(9일)한 직후, 전주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 마지막까지 ‘성실맨’으로!

-한 팀에서 오래 뛰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맞다. 2011시즌을 마치고 대전을 떠나야 했을 때는 심란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가장 진지하게 은퇴 고민을 한 시기였다. 다행히 전북이 손을 내밀어줬다. 내 나이 마흔인데. 새파란 젊은 선수도 아니었는데 러브 콜을 보내주다니, 놀라웠다. 나보다 가족들이 더 행복해했던 것 같다. 함께 밥을 먹다가 눈물을 보일 정도로 전북에 고마워하더라.”

-행복한 사람이었다.

“정말 그렇다. 1997년 프로 데뷔 때만 해도 ‘딱 10년만 프로 생활을 하자’가 목표였다. 그 때 ‘모든 걸 내려놓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웃음) 강산이 2번쯤 바뀌고 있는 지금껏 있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은퇴 행사도 못 받는 이가 얼마나 많은데.”

-은퇴 선언을 하니 어떤가.

“마음이 너무 편했다. 더 이상 극심한 긴장과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게임 준비하며 신경이 곤두서지 않아도 되니까. 오랜 짐을 내려놨다고 생각하니 전혀 슬프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다.”

-정확히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듣고 싶은데.

“딱 하나다. 거짓 없는 몸 때문이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어느날 보니 손가락이 짝짝이고, 잘 붙지도 않더라. 작년부터 볼을 찰 때 멀리 나가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었다. 30대 중반이라면 플레잉코치 역할도 제대로 했을 거다. 이젠 아니다. 운동을 해도 무거웠고, 컨디션도 그대로더라. 더 뛸 순 없었다. 민폐 아닌가.”

최은성은 월드컵 휴식기를 앞둔 5월 무렵, 전북 최강희 감독과 은퇴에 대해 처음 상의했다. 진지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한 최 감독의 한마디에 마음을 먹었다. “은성이도 서서히 지도자 준비를 해야 하고….” 대답은 금세 나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대로 할게요.” 전북은 큰 선물을 마련했다. 치열한 순위싸움 와중에도 과감히 상주전 교체카드 한 장을 포기했다. 공식 축구경기 교체는 3회다. 전북은 하프타임에 GK를 바꿨으니, 교체카드가 2장이 전부였다. 최 감독은 “영웅을 위해 그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더 큰 걸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고, 상주 박항서 감독도 “우리 선수들에게 ‘봐주지 말고 강하게 공격하자’고, ‘슛을 때려라’라고 주문했다. 그게 영웅에 대한 진짜 예우”라며 2002한일월드컵 당시 함께 한 제자에게 갈채를 보냈다.

● 이젠 내려놓을 때!

-18년 프로 인생에 전혀 후회는 없나.

“운동하며 후회는 없었다. 아, 한 번은 있다. 잘못된 선택? GK? (웃음) 아마, 모든 골키퍼가 그럴 거다. 막연히 필드에서 뛰고 싶다는 갈망 때문에 대학(인천대) 때 필드 플레이어 전향을 고려한적은 있다. 대전에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간 건 아픔이긴 하다. 그래도 그게 운명이었다. 대전에도 늘 고마운 마음이다.”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것도 마음 한 구석의 빈 자리인데, 어쩔 수 없는 건 털어버려야지.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아쉬움이 있기에 더 열심히 살 수 있지 않았겠나. 이젠 지도자로 우승트로피를 한 번 들어보련다.”

-자신에게 김병지(44·전남 드래곤즈)란?

“왜 그 질문이 없나 했다. (김)병지 형은 우리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마부다. 안내자였고, 인도자였다. 우린 항상 형을 따라가려 했고. 한 번도 형을 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솔직히 기록에 심드렁한 것도 있다. 언젠가 (최강희) 감독님 손님 분이 내게 물어보더라. ‘몇 경기 뛰었냐’고. 정말 내 기록을 몰랐다. ‘한 500경기쯤 뛰었다’는 답을 했던 것 같다. 대전에서도 400경기를 앞두고 후배들이 ‘형님, 이제 몇 경기 남았어요’란 말을 해줄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 들고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생각은 없었나.

“아니, 많이 들었다. 후배들이 날 얼마나 원망했겠나. 그래도 내 앞에서 함께 웃으며 뛰어줬으니 고맙다. 그간 후배들과 경쟁하는걸 솔직히 즐겨왔던 것 같다. 한 시즌 끝내고 다음을 준비하면서 땀 흘릴 때, 후배들에게 지기 싫어서 더 열심히 몸을 날렸다.”

-롤 모델이 있었는지.

“지금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GK 코치로 활동하시는 정기동 선배다. 1984년 포항제철중의 창단 멤버로 입학했을 때, 포항의 주전 수문장으로 뛰는 정 선배를 보며 홀딱 반했다. 그 분 플레이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미국 GK로 나선 프리델을 보면서 또 한 번 제대로 배웠고.”

프로선수로 532경기(K리그만 포함)에 나선 최은성이지만, 태극마크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었음에도 A매치 출격 횟수는 한 번이다. 2001년 9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2-1 한국 승)이 처음이자, 마지막 A매치였다. 16차례 대표팀에 소집됐지만 항상 그의 자리는 벤치였다. 역시 아쉬움은 없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대답은 한결같았다.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왜냐고?

“12년 전 난 31세였다. 30세 넘어 무슨 대표선수인가. 2002년 최종엔트리 발탁 사실도 한 지인의 연락으로 뒤늦게 알았다. 당시 GK 후보군이 꽤 쟁쟁했다. 꿈도 못 꿨는데, 4강을 현장에서 지켜봤으니…. 그래도 ‘오늘과 지금에 충실하자’는 내 좌우명이 지금의 최은성을 만들어줬다. 이 말도 꼭 넣어줬으면 한다. ‘전북맨’으로 떠났고, 앞으로도 ‘전북 코치’로 남겠지만, ‘대전 맨’이었던 그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다고. 대전 서포터스, 대전 구단 옛 사무국 직원들 모두에 감사드린다고.”

최은성은? ▲생년월일=1971년 4월 5일 ▲키·몸무게=184cm·82kg ▲출신교=성내초∼포항제철중∼강동고∼인천대 ▲프로 경력=대전 시티즌(1997∼2012년 3월·464경기 603실점 1도움), 전북현대(2012년 3월∼2014년 7월 20일 은퇴·68경기 71실점) ▲A매치=1회(2001년 9월 나이지리아전) ▲국가대표 경력=2002년 한일월드컵(4위)

전주|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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