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아, 멀리 봐야 탄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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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6월 19일 07시 00분


박찬호가 18일 오전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린 자전에세이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은퇴 이후의 복잡했던 심경을 털어놓고 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박찬호가 18일 오전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린 자전에세이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은퇴 이후의 복잡했던 심경을 털어놓고 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박찬호, 자전에세이 출간기념 기자회견
후배들에 오직 빠른공만 보여줘 미안

제구의 중요성 알리는게 현진이 역할

길게 보고 하나하나 쌓아가는게 중요
은퇴 후 멘붕 ‘사람 박찬호’로 새인생

주변분들 응원이 큰 힘…모두가 멘토

“짧게 보면 불안해진다. 그러나 길게 보면 탄탄해진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40)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6·LA 다저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비단 류현진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통용될 메시지다.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 투수인 박찬호는 18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자전에세이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은퇴한 뒤 야구선수 인생의 졸업논문을 준비하는 느낌으로 이 책을 썼다”며 “최근 류현진의 활약이 내게 더 당당함을 준다. 현진이도 ‘긴 여행’을 떠나는 중인 것 같다”고 말했다.
○“후배 류현진은 지금 ‘긴 여행’을 떠나는 중”

지난해 한화에서 박찬호와 함께 뛴 류현진은 올해 박찬호의 친정팀 LA 다저스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박찬호는 “류현진을 보면 후배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 뒤를 이어 해외에 진출했던 선수들은 박찬호의 빠른 공, 시속 160km에 가까운 직구만 바라봤다. 그런데 야구를 오래해보니 빠른 볼보다 컨트롤이 더 중요하는 걸 느끼게 됐다”며 “류현진처럼 정확한 공을 던져야 한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그 중요성을 알리는 게 류현진의 역할인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그가 메이저리그 선배로서 류현진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단 하나. ‘멀리 보라’는 것이다. 박찬호는 “예전에 샌디 쿠팩스가 길을 걷는 사진에 ‘너는 지금 긴 여행길을 걷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써서 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제는 알겠다”며 “오늘의 경기, 올 시즌이 아니라 멀리 보고 하나씩 쌓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은퇴 후 찾아온 혼란, ‘낮은 마음’으로 이겨냈다!

박찬호는 한화에서 보낸 2012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평생 야구만 했고, 야구로 일가를 이룬 그다. 자연스럽게 허전한 마음이 밀려왔다. 박찬호는 “은퇴 후 갑자기 ‘멘붕(멘탈 붕괴)’이 오고 우울증도 생겼다. 늘 매일 똑같이 짜여진 일정에 따라 살았는데, 갑자기 그게 없어진 게 충격적이었다. 22층 집까지 늘 걸어 올라갔는데, 이젠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는 것도 불안하게 다가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혼란의 시기를 무사히 지난 지금, ‘선수 박찬호’가 아닌 ‘사람 박찬호’의 인생을 새로 설계하고 있다. 스스로 ‘내 인생은 여전히 마이너리그’라고 표현한 그는 “아직 화려하고 인정받던 기억과 마음들이 몸에 배 있는 것 같다. 좀더 지혜로워져야 할 것 같다”며 “창피하고 부끄러운 실수를 인정하고 보완하던 마이너리그 때처럼 항상 부족한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멘토, “절박함 배웠다”

다행히 박찬호의 주변에는 그가 걸어온 길에 박수를 보내고 새 출발을 격려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해인 수녀, 혜민 스님과 같은 종교인들부터 안성기, 차인표를 비롯한 유명 배우들, 그리고 가수 싸이와 후배 류현진까지 각계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이 박찬호의 책 출간을 축하했다. 기자간담회에는 동기생인 넥센 홍원기 코치와 넥센 외야수 송지만, 차명주 재활 트레이닝센터장이 참석해 든든하게 곁을 지켰다.

박찬호는 “생각해보면 내가 늘 주변 분들을 피곤하게 했던 것 같다. 자꾸 얘기하고 만나고 소통하면서 서로 잘 알게 되는 것이 내 인맥관리 비결”이라며 “지난해 한화에서 후배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절박함’이라는 감정을 배우고 큰 깨달음도 얻었다. 이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 모두가 내게 스승이자 멘토”라며 활짝 웃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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