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문아, 첫승했다고 까불면 안돼”… “탱크 형님 가신 길만 따르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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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개막 PGA 메모리얼 토너먼트… 최경주-배상문 동반 연습라운딩
“마인드도 좋아 나를 능가할 재목”… “2016올림픽 금메달 따고 싶어요”

배상문(왼쪽)이 30일 미국 오하이오 주 더블린의 뮤어필드빌리지골프클럽에서 최경주를 끌어안으며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둘은 31일부터 같은 장소에서 시작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에 출전한다. 더블린(미국 오하이오 주)=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배상문(왼쪽)이 30일 미국 오하이오 주 더블린의 뮤어필드빌리지골프클럽에서 최경주를 끌어안으며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둘은 31일부터 같은 장소에서 시작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에 출전한다. 더블린(미국 오하이오 주)=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둘의 관계를 잘 드러낼 만한 포즈를 주문했더니 배상문(27·캘러웨이)은 팔을 쑥 내밀어 하늘같은 선배의 허리춤을 감싼 뒤 배까지 어루만졌다. 후배에게 허를 찔린 최경주(43·SK텔레콤)의 얼굴에 하회탈 같은 미소가 번졌다. 30일 미국 오하이오 주 더블린의 뮤어필드빌리지골프클럽.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하루 뒤 시작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에 앞서 이날 함께 9개 홀 연습라운드를 했다. ‘황금곰’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이 대회는 배상문이 20일 HP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PGA투어 첫 승을 거둔 뒤 멘토로 여기는 최경주와 처음 동반 출전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직접 케이크를 장만해 한국 식당에서 축하 파티를 주최한 최경주는 “첫 승의 기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일처럼 기쁘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최경주는 삼십 줄에 접어든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PGA투어 첫 승을 장식했다. 배상문은 “당시 고1이었는데 솔직히 최 프로님 우승 뉴스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내겐 너무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그해 한국오픈에 출전한 최 프로님에게 받은 사인을 아직도 갖고 있다”고 떠올렸다. 호남(전남 완도) 출신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경주는 고향이 영남(대구)인 데다 불교 집안인 배상문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배상문은 최경주의 뒤를 밟듯 한국과 일본을 거쳐 지난해 PGA투어에 입성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던 배상문은 최경주와 이웃사촌이 되기 위해 최근 댈러스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

최경주(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HP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20일)에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첫 승을 거둔 배상문(앞줄 가운데)을 위해 29일 직접 케이크를 장만해 축하파티를 열었다. 스티븐 조 씨 제공
최경주(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HP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20일)에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첫 승을 거둔 배상문(앞줄 가운데)을 위해 29일 직접 케이크를 장만해 축하파티를 열었다. 스티븐 조 씨 제공
최경주는 배상문에 대해 “‘기계(신체조건)’가 좋은 데다 남다른 마인드까지 있어 나를 능가할 재목”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첫 승했다고 까불면 안 된다. 초심을 지키며 앞으로 3년은 다시 시작하는 자세를 가져야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당부했다. 배상문은 “최 프로님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국 선수도 없고 내비게이션, 한국 식당도 없고 외국 선수 텃세도 심했는데 온갖 고생 속에서도 한국 프로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고 고마워했다.

최경주는 2007년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니클라우스에게서 트로피를 받은 것을 포함해 이번이 14번째 도전이다. 족집게 강사의 코스 특강에 귀를 세웠던 배상문은 최경주가 공을 벙커에 빠뜨리자 “모처럼 벙커샷 한번 제대로 보여 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최경주는 댈러스 집으로 배상문을 불러 하루 4시간씩 벙커샷만 가르친 적이 있다.

“내 골프 인생이 18홀이라면 이제 13번홀 정도에 온 것 같다. 앞으로 2승 더 올려 PGA투어 통산 10승을 채우고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하겠다.”(최경주)

“메이저 우승 같은 목표는 아직 건방진 것 같다. 다만 한국과 일본에서처럼 두 번째 우승은 더 빨리 올 것이다. 2016년 올림픽에는 꼭 나가고 싶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어딘가 아름답지 않은가.”(배상문)

앞날을 떠올리며 진지해졌던 이들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내일 개막이니 오늘 저녁은 차돌박이로 몸보신하자.” 최경주가 저녁 메뉴를 정했을 때였다. 어느새 오하이오 대평원의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저물고 있었다.

더블린=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최경주#배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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