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와 싸우는 ‘빙판 불도저’… 아이스하키 박태환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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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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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한라 악역 도맡는 ‘인포서’… 강력한 보디체크로 상대 기 꺾어
“다리 붓는 희귀병도 날 못막아”

안양 한라 제공
안양 한라 제공
“쿵!”

19일 일본 도쿄의 히가시 후시미 아이스링크. 안양 한라와 일본 오지 이글스의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 경기가 한참 뜨거워질 무렵 선수들의 몸이 충돌했다. 심판은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 다시 경기를 지속시켰다. 상대편 선수에게 달려가 부딪친 선수는 안양 한라 박태환(24·사진). 180cm, 94kg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그는 상대편에게 기피 대상 1호다. 그는 자신의 팀에 위협적인 선수가 있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가 부딪쳐 압박을 가한다. 때로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새인가 그가 달려가면 상대 선수들은 공격을 멈추고 몸을 피하기부터 한다. 이날 안양 한라는 접전 끝에 2-3으로 졌지만 그는 고비마다 팀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는 인포서(enforcer) 역할을 자처한다. 아이스하키에서는 빠른 스피드로 좁은 링크를 움직이다 보니 선수들의 충돌이 잦다. 인포서는 상대를 몰아붙여 압박감을 주는 임무를 수행한다. 상대의 거친 플레이도 막아주고 때로는 동료에게 가해진 위협행위에 보복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해외에서 인포서는 득점과 도움은 적지만 팀의 간판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충돌을 가급적 자제하는 아시아 무대에서 그가 인포서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낯설다. 그는 “인포서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팀이 위기를 맞을 때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저돌적인 행동 때문에 심의식 안양 한라 감독은 경기 전 항상 그를 불러 “오늘은 싸우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감독은 물론 코칭스태프는 “그의 플레이로 팀 분위기가 살아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치켜세운다.

빙판 위에서는 거친 선수이지만 빙판 밖에서는 내성적인 청년이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그는 머리 모양 바꾸기에 공을 들인다. 특히 핑크색을 좋아해 휴대전화는 물론 양말과 스케이트화의 끈도 핑크색으로 치장했다. 하얀 빙판 위에 서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핑크색을 좋아했다. 튀는 것을 좋아하는데 외국인 선수들은 게이라고 놀리기도 한다”며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주위에서는 그를 ‘4차원’이라 불렀다. 독특하다는 뜻이다.

빙판 위에서는 절대 몸을 사리지 않지만 사실 그는 희귀병 환자다. 지난 시즌 안양 한라에 입단했지만 1년을 병 때문에 뛰지 못했다. 뼈 사이의 종양으로 인해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다리가 쉽게 붓는 ‘구획증후군’을 앓고 있다. 경복고와 연세대 1, 2학년 재학 시절엔 팀의 에이스였지만 대학 3학년 때 찾아온 구획증후군으로 3년간 재활을 위해 병원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국내에서 찾아가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다. 오래 뛰면 또 심해지겠지만 그래도 빙판 위를 달릴 수 있을 때 힘껏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빙판 밖에서는 ‘4차원’으로 불리지만 빙판에서만은 있는 힘을 다 쏟아붓는 그는 그답게 남들과는 다른 목표가 있다. “골을 넣는 것보다 멋있게 상대 선수를 체킹해서 넘어뜨리는 것이 좋다. 아시아 최고의 인포서가 돼 팬들을 즐겁게 해줘서 아이스하키 인기를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부상도 꿈을 꺾지 못한다는 말은 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도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아이스하키#박태환#인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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