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 성장판 닫힌 고교야구 ‘특급괴물’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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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4일 07시 00분


한국 청소년대표팀 이정훈 감독. 스포츠동아DB
한국 청소년대표팀 이정훈 감독. 스포츠동아DB
안방서 세계청소년대회 5위…고교야구 현실

캐치볼 스윙 등 기본기 부족…갈수록 실력 뚝
승리만 치중하는 투수들 컨트롤보다 스피드!
프로 첫해엔 팀 주전 꿈 못꾸고 체력 훈련만


띄엄띄엄 주말리그·학부모 머니파워 큰 문제
지도자 말은 안통해…TV보며 잔기술만 연마


안방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8월 30일∼9월 8일)에서 우승을 기대했던 한국이 5위에 그쳤다. 마지막 날 5·6위전에서 일본에 결선라운드 완패를 설욕했지만, 때는 늦었다. 우리 아마추어야구, 특히 고교야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회였다.

○꿈나무의 기량이 갈수록 퇴보한다?

올해 우리 고교야구는 흉작이었다. 고교 3학년이 주축이어야 하는 청소년대표팀 20명 엔트리에도 2학년이 5명이나 끼었다. 투수 8명 가운데선 절반인 4명이 2학년이었다. 내년을 더 기대한다는 의미지만, “고교선수들의 기량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프로 스카우트들의 걱정이 괜한 소리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타격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예선라운드 미국전을 제외하고는 상대 투수들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한·일전에선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본 고교랭킹 1위 후지나미 신타로의 빠른 슬라이더에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변화구에 약했다. “우리 타자들 대부분은 몸이 앞으로 나가면서 상체 위주의 스윙을 한다. 캐나다, 미국뿐 아니라 대만 타자들은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하체를 이용한 스윙을 한다. 앞으로 이런 점에 대해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우리 타자들의 타격 포인트는 상대팀에 비해 몸에서 훨씬 떨어져 있다. 배트 중심에 맞힐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8일 막을 내린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의 참패는 우리 고교야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결과물이었다. 3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예선라운드 콜롬비아전에서 1-3으로 패한 뒤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 선수단.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8일 막을 내린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의 참패는 우리 고교야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결과물이었다. 3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예선라운드 콜롬비아전에서 1-3으로 패한 뒤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 선수단.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아마추어야구의 기본기가 떨어지는 이유는?

아마야구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이기기 위한 야구만 해온’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캐치볼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기량도 갖추지 않은 채 잔기술만 배워온 결과라는 얘기다. 이 같은 아마선수들의 기본기 미숙은 프로 현장에서도 입증된다. “요즘 선수들은 제대로 글러브질을 못한다. 내야수의 실책이 많이 나오는 이유다. 주자에게 태그를 제대로 하는 선수도 드물다. 해결책을 김재박 감독 같은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라고 모 심판은 말했다.

원로 야구인 박영길 전 감독도 “캐치볼은 야구에서 가장 기본이다. 공을 올바른 위치에서 잡고 정확하게 던져야 배팅 같은 다른 부분에서도 발전하는데, 요즘 선수들은 경기 전에 하는 캐치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박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전설적 내야수 요시다 요시오를 예로 들었다. 수비의 달인이었던 그는 항상 글러브에 공을 던졌다가 빼는 훈련을 반복했다. 하루 3000개씩 했다. 원정 열차 안에서도 빼놓지 않았다. 그 훈련을 통해 누구보다 빨리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고 제대로 쥐는 감각을 길렀다.

우리 아마선수들은 기본적 기술보다는 안타와 홈런에 열중한다. 투수는 컨트롤보다 스피드에 치중한다. 당장의 승리와 프로팀의 눈길을 의식한 결과다. 그러나 요즘 프로팀은 신인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1998년 삼성 강동우 이후 신인 3할 타자는 실종됐다. 입단 첫해 팀의 주전은 상상도 못한다. 이제는 어느 선수라도 2∼3년간 2군에서 다시 야구를 배운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2006년 한화 류현진을 제외하고는 21세기 들어 입단 첫 해 10승을 넘긴 고졸신인선발투수는 없다. 아무리 프로의 실력이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아마야구의 기술적 후퇴를 상징한다.

○주말리그와 학부모, 아마추어 야구를 후퇴시켰나?

현장에선 주말리그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100% 신뢰할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들을 가치는 있다. “타격은 매일 경기를 하면서 감각도 익히고, 상대 투수를 공략하는 노하우도 배운다. 지금처럼 주말에 띄엄띄엄 경기를 해서는 야수의 기량이 늘 수 없다. 투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잘하는 선수만 던진다. 문제가 많다”고 어느 고교팀 감독은 말한다. 주말리그는 대한야구협회의 역점사업이다. 고교선수에게 학습권을 보장하겠다는 좋은 뜻에서 시작됐다. 프로나 대학 진출이 좌절된 꿈나무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기 위해 ‘최소한의 공부’는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학부모 대부분은 야구선수로서의 인생만 생각한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다. 자식이 프로선수로 성공하는 것에 올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습권 보장은 공염불이다. 게다가 중학교선수들은 평일에도 경기를 하는데, 고교선수에게만 주말야구를 하라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리틀야구 같은 기초부터 먼저 변해야 맞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다. 학부모의 돈으로 운영되는 아마야구의 시스템이다. 학교에서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야구팀을 위해 학부모들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호주머니를 털다보니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지도자들이 승리만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부모들은 기초적인 기술전수보다는 프로 입단이나 대학 진학에 필요한 기술을 더 요구한다.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도 없다. 성적이 나쁘면 교장실로, 이사장실로 몰려가 감독 교체를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은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TV에서 본 프로선수의 기술에 더욱 현혹되고 매달린다. 자식을 아낀다고 병원 진단서를 들고 와 훈련을 못하게 하는 학부모도 있다. 요즘 우리 선수들의 체격은 커졌지만 끈기와 지구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100개 한계투구라는 정체불명의 야구이론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해결책은 없나?

아마야구의 후퇴는 프로야구의 암울한 미래로 이어진다. 지금 전통의 명문팀들이 야구를 포기하려 한다. 명맥은 이어가지만 의지가 없는 학교도 많다. 돈과 실력, 인기를 가지고 있는 프로에서 먼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프로구단들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제10구단 창단의 전제조건이었던 야구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자신들의 힘으로 고교팀을 만들어보라.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해야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야구인들도 변해야 한다. 프로와 아마의 지도자들이 만나 훈련방법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비 시즌 때 워크숍을 함께 해도 좋다. 리틀야구 때부터 어떻게 훈련하고, 프로에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야 한다. KBO와 대한야구협회의 현실인식이 중요하다. 지금 올바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앞으로가 고생스럽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b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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