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멈춰선 1초, 울어버린 신아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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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에페 준결 종료직전 오심으로 상대선수에 기회 더 줘… 5-6 분패

4차례 공격이 오갔지만 1초도 흐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상황을 생중계한 KBS는 영상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첫 번째 공격에는 6프레임(화면 왼쪽 위 숫자의 마지막 두 자리)이 걸렸다. 프레임은 영화나 TV방송의 장면 하나를 이르는 용어다. 1프레임은 30분의 1초, 약 0.33초다. 첫 번째 공격에는 약 0.2초가 걸렸다(장면1). 두 번째 공격을 마쳤을 때는 19프레임이 소요됐다. 약 0.63초다(장면2). 세 번째 공격이 끝났을 때는 이미 1초가 넘었고 17프레임이 추가됐다. 약 1.56초다(장면3). 화면 분석에 따른 약간의 오차를 감안해도 1초는 충분히 넘었다. 정상적 경기 진행이었다면 네 번째 공격 시도는 불가능했다. KBS TV 화면 촬영
4차례 공격이 오갔지만 1초도 흐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상황을 생중계한 KBS는 영상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첫 번째 공격에는 6프레임(화면 왼쪽 위 숫자의 마지막 두 자리)이 걸렸다. 프레임은 영화나 TV방송의 장면 하나를 이르는 용어다. 1프레임은 30분의 1초, 약 0.33초다. 첫 번째 공격에는 약 0.2초가 걸렸다(장면1). 두 번째 공격을 마쳤을 때는 19프레임이 소요됐다. 약 0.63초다(장면2). 세 번째 공격이 끝났을 때는 이미 1초가 넘었고 17프레임이 추가됐다. 약 1.56초다(장면3). 화면 분석에 따른 약간의 오차를 감안해도 1초는 충분히 넘었다. 정상적 경기 진행이었다면 네 번째 공격 시도는 불가능했다. KBS TV 화면 촬영
운수 좋은 날이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 47분(현지 시간)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영국 엑셀 런던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판정 논란 속에 노 메달에 그친 신아람(26) 얘기다.

세계 12위 신아람은 4강까지 거침이 없었다. 준결승 상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리타 하이데만(독일). 하지만 전성기가 지났고 현재 세계 17위까지 처져 있어 메달 희망을 부풀렸다.

신아람은 준결승 정규시간을 5-5 동점으로 끝내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3분을 동점으로 끝낼 경우 이기게 되는 어드밴티지까지 확보했다. 어드밴티지 규칙은 공격적인 펜싱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오심은 여전히 5-5로 맞선 종료 1초 전 나왔다. 1초를 남기고 신아람은 상대와 세 번이나 동시에 서로를 찔렀지만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네 번째 공격에서 하이데만에게 점수를 허용해 5-6으로 패했다. 한국 코치진은 1시간여 동안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국제펜싱연맹(FIE) 심판진은 재심 끝에 하이데만의 승리를 선언했다. 하이데만은 결승에 진출해 은메달을 땄다. 그렇다면 시계는 왜 3번의 공격 시도 동안 1초도 흐르지 않은 걸까.

먼저 심판이 실수 또는 고의로 스톱워치를 누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김국현 대한펜싱협회 부회장은 “심판이 의도적으로 스톱워치를 누르지 않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펜싱 관계자는 “타임워치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동시 공격이 이뤄졌을 때 공격이 성공했다는 신호도 들어오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펜싱에 사용되는 타임워치의 작동 방식도 논란거리다. FIE 관계자들은 소수점 아래 단위가 없는 펜싱 시계는 1초가 남은 상황에서 0.9초가 흘러도 다음 상황에서는 다시 1초가 남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창곤 FIE 심판위원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1초가 흐르기 전에 경기가 중단돼도 다시 시계가 1초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 번의 공격이 각각 아무리 빨랐더라도 모두 합친다면 1초가 지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널A 영상] 신아람 경기당시 시간 재던 타임키퍼, ‘15살’ 자원봉사자

하이데만의 결승 득점이 인정된 네 번째 공격의 경우 1초가 흐른 뒤 이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심재성 코치는 “하이데만이 신아람의 칼을 쳐낸 뒤에 들어갔기 때문에 앞의 공격보다 길었다. 독일 코치도 네 번째 공격 인정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나를 위로했다”고 말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권택용 박사는 비디오 판독 결과 “하이데만이 세 번 공격하는 데 걸린 시간이 모두 1.42초가 걸린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FIE는 31일 해당 심판 조치 요구 등을 포함한 한국팀의 항의를 끝내 기각했다.

3, 4위전에 나선 신아람에게는 유럽인이 대부분인 8000여 관중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관중은 심판 판정에 항의한다는 의미를 담아 신아람이 점수를 올릴 때마다 발로 바닥을 구르며 박수를 쳤다. 3, 4위전에서 세계 1위 쑨위제(중국)에게 패해 노 메달에 그쳤지만 더 많은 박수를 받은 건 신아람이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 선 신아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짧은 소감을 밝힌 뒤 떠났다. “1초가 그렇게 긴 줄 몰랐어요. 피스트(펜싱 경기장)에서 기다리던 1시간이 지난 4년과 비슷하게 길게 느껴졌어요. 티켓을 사서 제 경기를 기다려준 관중과 한국 팬들에게 죄송해요.” 현진건의 소설처럼 신아람의 ‘운수 좋은 날’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신아람#펜싱#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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