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이종도 “연장 끝내기 만루포…이선희한테 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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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7시 00분


1. MBC 청룡의 이종도(오른쪽)가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연장 끝내기 홈런을 친 후 3루를 돌며 주루코치와 얼싸 안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 19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원년 개막식서 선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3.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시구를 마치고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4.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의 감독겸 선수로 활약했던 백인천의 타격 모습. 5. 동대문구장에 걸린 각 구단의 플래카드가 프로야구 출범을 알리고 있다. 스포츠동아DB
1. MBC 청룡의 이종도(오른쪽)가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연장 끝내기 홈런을 친 후 3루를 돌며 주루코치와 얼싸 안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 19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원년 개막식서 선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3.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시구를 마치고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4.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의 감독겸 선수로 활약했던 백인천의 타격 모습. 5. 동대문구장에 걸린 각 구단의 플래카드가 프로야구 출범을 알리고 있다. 스포츠동아DB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비하인드 스토리 생생 증언

프로야구가 역대 최고의 호황기에 접어든 느낌이다. 시범경기부터 매진을 기록하는 등 역대 최다 관중의 조짐이 두드러진다. 프로야구 르네상스의 시작점은 1982년 3월 27일 삼성-MBC의 개막전이었다. 그 경기부터 한국프로야구는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고, 거기서부터 30년 후의 찬란한 미래를 예고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프로야구 3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했지만(KBO는 KBO의 창립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다) 당시 스포츠동아가 지적한 바 있듯 프로야구 30번째 시즌이 2011년이지, 30주년은 엄연히 2012년이다. 이에 스포츠동아는 창간 4주년과 프로야구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으로 원년 개막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당시 인물들의 육성으로 재조명한다.

“한국서 유일하게 울었던 날”

○백인천 전 감독(원년 개막전 MBC 5번 지명타자)

원년 개막전 하면 내가 울었다는 기억이 나. 극적으로 이겨 감격해서 운 것이 아니라 ‘프로야구가 우리나라에서 생겼구나’ 하는 안도의 눈물이었어. 일본에서 선수로 뛸 때부터 기대는 했지만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불안도 했고. 프로야구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일본에서 나만 프로를 경험했으니 ‘프로가 무엇인지 보여줘야겠다’ 싶었지. 개막전은 (감독인)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경기였어요.

나이 열아홉 살에 일본에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너희 나라 가서 야구하라’고 야유하지, 한국에서는 ‘일본에 팔려간다’고 하지, 양쪽의 고통을 다 기억해. 내가 일본에서 타격왕까지 해냈지만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뛰어들었어. 야구 하나로 뛰어 든거지.

MBC 감독이 된 것도 ‘다른 사람 가고 남은 데를 가겠습니다’ 해서 마지막 남은 팀이 거기였어요. 전력이 약했지. 국가대표 멤버만 해도 삼성이 훨씬 많았고. 초반에 일방적으로 끌려갔지만 흐름이 올 거라는 감은 있었어. 이종도의 만루홈런도 대단하지만 (홈런을 맞은) 이선희가 공로자야. 프로야구는 역시 다르구나 하는 것을 보여줬어. 나중에 LG에서 우승했을 때도 안 울었는데 그날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운 날이야.

“은행원 하다 아내 권유로 프로행”

○이종도 속초상고 감독(MBC 6번 좌익수)

그럼요. 다 기억나죠. 감은 썩 좋지 않았어요. 그날 6번을 쳤어요. 유승안이 감이 좋아 4번, 백인천 감독이 5번. 첫 타석부터 빗맞은 2루타 치면서 경기가 잘 풀렸죠. MBC의 첫 안타, 첫 득점도 제가 했고요.

프로야구가 생길 때 제일은행 대리 된지 1년 됐어요. 상당히 고민 됐죠. 그냥 있으면 지점장도 될 수 있었는데. 와이프하고 상의했는데 “좋아하는 것 해야 후회 안하지”라고 힘을 실어줬어요. 프로야구가 생겼는데 야구인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싶더라고요. ‘내가 서른 살인데 프로에서 10년만 버티자’ 결심했죠.

내가 원래 승부사 기질이 좀 있습니다. 아마추어 통산 1000호 홈런, 고교 최초 봉황기 1회 무사만루홈런, 정기 고·연전 9회말 투아웃 동점홈런도 내가 쳤어요. 그러나 내 생애 최고 경기는 당연히 그날이에요. 당시 기억에 ‘안타 하나면 끝난다’고 생각했기에. 홈런은 전혀 안 노렸어요. 그 끝내기 홈런볼은 어디 갔는지 몰라. 배트는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일이지만, 안 맞을 때마다 경기에 들고나가다 부러졌어요. 그런데 그 부러진 방망이를 누군가 치워버렸더라고. 항상 이맘때면 개막전 얘기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이선희한테 늘 미안해요.

“홈런 세리머니 지금 보면 민망”

○이만수 SK 감독(삼성 4번 포수)

프로야구가 안 생겼으면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은 것이 꿈이었습니다. 한양대 4학년 때 포항제철과 계약했는데 프로야구 생기니까 연고팀인 삼성에 갔죠. 시범경기부터 쭉 4번이었는데 1회 앞 세 타자가 안타가 없어서 사실 욕심이 났어요. 이길환의 몸쪽 직구를 잡아당겨 2루타가 됐는데, 프로야구 첫 안타·첫 타점이었죠. 5회에는 유종겸의 몸쪽 직구를 받아쳤는데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했어요. 그때 팔짝팔짝 뛰었는데 지금 보면 민망해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시구를 했는데 경호원이 바바리코트를 입고 심판을 봤어요. 시구 끝나고 김광철 심판이 들어온 기억이 나요. 당시에는 지고 나서 초상집이었지만, 그 경기 이후 야구 붐이 일어났다고 믿어요.

“동점 스리런 쳤지만 역적될 뻔”

○유승안 경찰청 감독(MBC 4번 포수)

황규봉의 볼이 그날 높더라. 점수차가 3점인데 상황이 홈런이면 동점이니 당연히 큰 걸 노렸지. 맞춤하게 약간 실투성으로 가운데 높게 오더라고. 썩 잘 맞지는 않았는데 회전이 잘 먹어 그대로 넘어갔어. 아마 타자라면 누구나 그 상황에선 큰 걸 노렸을 거야.

10회말에도 마찬가지야. 타자로서 본능으로 휘두른 거지. 포수가 바깥쪽으로 빠져 앉아 거르는 상황이었는데, 벤치에서도 당연히 기다리는 걸로 알고 사인도 없더라고. 그런데 4구째가 많이 빠지질 않았어. 포수가 앉아 있는 상태에서 머리 위로 조금 높은 정도? 그냥 본능적으로 배트가 나가더라고. 언론에서는 무슨 MVP 욕심 때문에 휘둘렀다 뭐다 그러는데, 그런 것보다도 여기서 내가 끝낼 수 있겠다 그런 생각뿐이었어. 타자는 투수가 정면승부하면 안 치면 안 되는 거지만, 공을 뺐는데도 쳤다는 거. 그래서 게임을 망칠 뻔했어. 충신과 역적을 오고 갔는데, 기분 좋은 결말로 끝나서 다행이지.

“망신만 면하자 했는데 승리투수”

○유종겸 배재고 투수코치(MBC 2번째 투수)

이만수 감독이 그 회의 선두타자였으니까, 일단 내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 카운트 잡으러 들어갔는데 그게 조금 높게 제구가 된 거야. 맞고 나니까 씁쓸하더라고. ‘개막전이라 높으신 분들이 다 와 있는데 내가 결국 맞았구나. 이렇게 이 감독은 스타가 되고 나는 기록의 제물이 되는구나.’ 그때만 해도 승리투수가 되리라곤 상상이나 했나. 6-2까지 끌려갔으니까 더 이상 추가실점을 막아서 개막전에 망신이나 당하지 말자 그런 생각이었지.

그렇게 8이닝을 던지고 ‘11회도 등판하나’ 하며 덕아웃에서 보고 있는데, 유승안 감독이 완전 빠지는 볼에 방망이가 나가는 거야. 그래서 결국 유 감독이 아웃되고, 대신 백인천 감독을 거르고. 거기서 이종도가 칠 줄은 몰랐는데, 이거 완전 각본 없는 드라마지. 나도 그렇고, 덕아웃에 있던 사람들이 다 그라운드로 뛰어 나가고. 세상이 그야말로 다 내 것 같은 분위기였어. 난리가 났었지.

“대통령 시구…몸수색 후 타석에”

○천보성 한양대 감독(삼성 1번 3루수)

개막 일주일 전에 서영무 감독이 ‘(선두타자는) 경험 많은 천보성이가 해야한데이’ 하더라고. 그래서 신상명세서를 만들어서 청와대에까지 보고가 올라가고. 경호원이 몸수색을 하고. 시구자가 전두환 대통령이었잖아? 그래서 혹시 시구자를 배트로 해칠까 싶어 타석 들어가기 직전에야 경호원이 건네주더라고.

지금이야 생각해보면 아주 멋진 경기였는데 당시엔 굉장히 당황했지. 원사이드로 이기던 게임을 져버렸으니까. 그룹 관계자들도 지켜보고 있었는데, 드라마틱하게 이겨도 시원찮을 판이었는데 말이야. 진다는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었는데. 5회였나? 중간에 사장님이 ‘너무 점수차 많이 나면 개막전이 싱거워지니 그것도 생각하라’고까지 했었는데.

“전대통령 ‘제구’ 안돼 두번 시구”

○김광철 전 심판위원장(구심)

화장실까지 경호원이 배치돼 있고, 구심 공주머니까지 수색하더라고.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이 첫 시구가 원바운드가 되니까 ‘한번 더 던져도 돼?’ 그러더라고. 누가 감히 안 된다고 하겠어? 그래서 한번 더 던졌는데 그건 잘 들어왔어.

이만수 감독이 1호 홈런을 쳤는데, 공은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조금 높은 슬라이더였어. 이 감독이 몸쪽은 약해도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걸 잡아당기는 건 일품이었거든. 홈런을 치고 나서 세레머니가 커서 유종겸도 그렇고 투수들에게는 기분 나쁠 만했지.

10회말에는 유승안 감독이 욕심이 좀 있었어. 그날 쓰리런도 치고 감이 좋은 날이었는데 하나만 치면 이기는 상황이니 왜 안 그렇겠어? 이종도에게는 이선희가 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투 볼이라 카운트 잡으러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 이종도가 노리고 있었고, 또 힘이 있는 선수라 맞으면 언제든 넘어갈 수 있었어. 이선희가 던진 건 몸쪽 직구였는데 좀 높게 제구됐어. 맞는 순간 ‘이건 넘어갔구나. 끝났구나’ 싶더라고.

극적인 경기였지. 이선희도 맞는 순간 고개를 떨어뜨렸고. ‘전 국민이 지켜보는 경기가 이렇게 되니 프로야구가 무조건 성공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

7회 동점후 연장10회 끝내기…‘MBC 드라마’ 대박

■ 다시 보는 원년 개막전 ‘삼성 vs MBC’

원년 개막전은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당시 서울운동장)에서 삼성-MBC전으로 열렸다.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된 경기는 1회초 이만수의 1타점 2루타 등으로 포문을 연 삼성이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5회초 이만수의 좌월1점홈런(프로야구 1호)이 터지며 점수는 6-2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MBC는 3회부터 구원등판한 유종겸이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는 가운데 추격을 전개해 7-4로 쫓아간 뒤 7회말 유승안의 우월3점홈런으로 마침내 동점을 만들었다.

7-7에서 끝내 연장에 돌입했고, MBC는 10회말 1사 2·3루의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 4번 유승안은 볼카운트 0-3에서 4구를 때려 투수땅볼로 물러났다. 삼성은 5번 백인천을 고의4구로 내보내 만루작전을 폈으나 이선희가 6번 이종도에게 끝내기 좌월만루홈런을 맞아 7-11로 역전패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matsri21
정도원 기자 united97@donga.com 트위터 @united97in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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