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두산 김민호 수비코치 “쥐뿔도 없던 나 열정과 배짱, 꿈으로 야구정글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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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0일 07시 00분


신고 선수로 출발한 두산 김민호 수비코치는 야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앞세워 팀이 자랑하는 유격수로 성장했다. OB(두산의 
전신)가 우승하던 1995년 한국시리즈 MVP도 그였다. 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감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스포츠동아DB
신고 선수로 출발한 두산 김민호 수비코치는 야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앞세워 팀이 자랑하는 유격수로 성장했다. OB(두산의 전신)가 우승하던 1995년 한국시리즈 MVP도 그였다. 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감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스포츠동아DB

13. 두산 수비코치 김민호

신고선수로 OB입단테스트
“스타 류중일보다 한수위”
할 수 있다는 배짱 어필해 선발
95년 KS서 맹활약 MVP
실전에 강하다 온몸으로 보여줘

김현수·이종욱·손시헌
연습생 출신의 성장에 뿌듯
꿈은 꾸는 자의 것,
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두산 김민호(43) 수비코치는 신고선수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를 원하는 구단이 한 곳도 없었다. 마침 실업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아버지는 입단을 권했다. ‘아들이 혹 프로에 도전했다가 또 다시 상처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김 코치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 하다 말 거였으면 그렇게 이 악물고 야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간절함은 통했다. 그는 1993년 계명대 김충녕 감독의 추천으로 OB 입단테스트를 받게 됐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윤동균 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은 “발이 빠르고 타격이 수준급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윤 감독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따로 있었다.

“(김)민호와 얘기를 나누는데 ‘류중일 선배(현 삼성 감독)보다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기가 차서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왜 다른 구단이 널 안 데려갔겠냐?’고 했더니 ‘정말입니다’라고 해요. 그때 류중일이 어떤 류중일입니까. 최고의 유격수 아니었습니까. 패기가 마음에 들어서 뽑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코치는 계약금 1000만원, 연봉 1200만원에 사인했다. 신인지명선수가 계약금 1200만원, 연봉 1200만원이었으니 연습생으로는 후한 금액이었다. 김 코치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만큼 안 주면 계약을 안 한다고 버텨내 얻어낸 결과”라며 웃었다.

김 코치의 야구인생은 늘 그랬다. 가진 것은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밖에 없었지만 스스로를 낮추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며 자신 있게 피력했고 행동으로 증명해보였다.

김 코치는 경주 태생이다. 열 살 때 야구의 매력에 빠졌지만 모교 월성초와 신라중에는 야구부가 없었다. 그는 다짜고짜 월성중으로 가서 입단테스트를 받았고 두 달간 타 학교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했다. 원래 재학중이던 신라중에서는 난리가 났다. 학생이 두 달이나 무단결석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퇴학당할 뻔 했죠(웃음). 다행히 위기는 넘겼는데 유급이 돼서 1년 더 학교를 다녔어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저에게 전화위복이 됐어요. 야구부가 있는 경주고에 가고 싶었는데 연합고사 커트라인이 170점 이상(200점 만점)이었거든요. 그때 제 모의고사 성적이 150점대여서 담임선생님이 원서도 못 넣게 하셨는데 4∼5개월 코피 흘려가며 공부해서 결국 합격했어요. 야구 때문에 그땐 공부도 치열하게 했네요. 하하.”

김 코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정식으로 야구를 배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선수들과 실력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악바리 근성이 있었다. 정강이뼈에 금이 가는 부상에도 그라운드를 누비며 주전을 꿰찼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계명대가 경주고에서 동계훈련을 하는 대신 매년 1명을 입학시키는 제도의 대상자였지만 1학년 때부터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 스카우트였는데 저는 학교 결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왔으니 선배들이 선수로도 안 봤죠. 글러브도 안 주고 만날 물만 나르게 시키더라고요. 하지만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찾아왔어요. 봄에 동국대와 연습경기가 열렸는데 날이 추우니까 선배들이 게임을 하기 싫어서 갑자기 아프다고 한 거예요. 그때 감독님이 저더러 나가라고 하셨고 결국 게임은 졌는데 제가 세 번째 타석에서 동점솔로홈런을 쳤어요. 감독님이 고민을 하다가 춘계리그 첫 경기에 1학년인 저를 스타팅으로 내보내주셨어요.”

프로 입단 후 김 코치는 “살아남기 위해” 더더욱 애를 썼다. 대개 70∼80%로만 참가하는 동계훈련에서 100%의 힘으로 10번이고, 20번이고 전력질주하며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아냈다. 비록 캠프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조기귀국해야 했지만 끝까지 당당했다. 귀국 전날 윤 감독과 생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나는 연습이 아닌 실전에 강하다. 경기에 내보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즌 시작되고 2군에 보름 정도 있다가 수비보강차원에서 1군으로 콜업이 됐는데 LG전이었어요. 제가 그때 대주자로 나갔는데 견제사를 당한 거예요. 돌아오는 타석은 당연히 교체였고 저는 다시 2군행이었는데 타격코치님한테 가서 ‘제가 저 타석에 한 번 서보기 위해 지금까지 야구했는데 한 번만 서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바로 안타를 쳤죠.”

김민호 코치. 스포츠동아DB
김민호 코치. 스포츠동아DB

다음날 LG와의 더블헤더에서 단숨에 스타팅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처럼 가슴이 떨렸던 적이 없었지만 ‘실전용’ 선수다웠다. 그날 2경기에서 7타수 3안타의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결정적인 순간에 터진 안타라 영양가도 높았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주전유격수 자리를 꿰차며 김민호,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1995년은 그에게 최고의 한 해였다. 페넌트레이스에서 빠른 발을 앞세운 톱타자로서 재능을 꽃 피우기 시작하더니 그해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4타수 2안타 1도루를 기록하며 권명철을 제치고 MVP를 차지했다.

“1994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제가 결정적인 실책을 해서 팀이 졌어요. 95년은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죠. 그때 룸메이트가 장원진 코치였는데 7차전 직전에 ‘안타 2개, 도루 1개만 기록하면 MVP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말 그대로 된 거죠.”

김 코치는 자신의 야구인생을 ‘꿈’, 한 글자로 표현했다. 입학이 불투명했던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 1학년 때 주전을 꿰차고, 연습생 출신이 프로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 모두 ‘야구를 잘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9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MVP를 해야겠다는 꿈을 꿨고 해냈다”며 “나에게는 꿈이라는 글자가 매우 중요했다”고 했다.

2004년 김 코치는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김경문 감독으로 사령탑이 교체된 후 코치 제의를 받았고 ‘지도자로서 꿈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김광수 코치의 조언에 결심을 했다. 하지만 선수와 코치의 삶은 천지차이였다. 그는 “코치는 단순히 선수들에게 기술만 전수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내 몸은 선수들 몸이었고 내 마음은 선수들 마음이었다”고 표현했다. 김 코치에게 가장 뿌듯한 순간도 “(김)현수, (이)종욱이, (손)시헌이 같은 연습생 출신 선수들이 잘 해주고 이만큼 성장한 것”이었다.

“저는 야구를 하면서 벤치에 앉아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선수 때는 경기에 나가느라, 코치가 된 후에는 선수들 플레이를 보느라.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는데 코치라고 벤치에 편하게 앉아있으면 미안하잖아요. 한 때는 저의 꿈이었지만 지금은 꿈을 꾸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게 제 꿈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야구를 즐겁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할 일인 것 같아요.”

● 김민호 코치?

▲ 생년월일 = 1969년 3월19일
▲ 출신교 = 월성초∼신라중∼경주고∼계명대
▲ 키·몸무게 = 181cm·81kg(우투우타)
▲ 프로 경력 = 1993년 OB 신고선수 입단∼2004년 두산 코치
▲ 프로 통산 성적 = 1113경기 3400타수 838안타(타율 0.246 ) 29홈런 232도루 227타점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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