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했다, ‘萬手’의 믿음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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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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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시즌 최다승 유재학 모비스 감독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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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 건 프로농구 출범 1년 전인 1996년이었다. 대우 창단 코치였던 그에게 연락하려면 ‘012’로 시작되는 삐삐 번호를 눌러야 했다. 농구를 향한 열정은 30대 초반이던 그때나 쉰을 바라보는 요즘이나 변함이 없다. 농구 전술을 묻기라도 하면 팔과 목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48). 그는 26일 전자랜드와의 울산 경기에서 74-58로 이기며 정규시즌 통산 363승째(330패)를 거둬 사령탑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1998년 35세의 나이에 대우에서 감독에 오른 뒤 693경기 만에 달성해 지난해 55세로 656경기 만에 362승을 올린 신선우 감독을 넘어섰다. “오래 하다 보니 이런 날을 맞네요. 14시즌을 쉬지 않고 감독직을 맡은 게 의미가 있다고 봐요.”

롱런의 비결은 믿음과 실력으로 압축된다. 스타 출신 유 감독은 기아에서 뛸 때 출신 학교에 따른 파벌 싸움과 부상에 휘말려 27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학연과 지연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 자신이 세운 원칙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킨다. 고참이나 고액 연봉자라고 봐주는 일도 없다. 부상 선수에 대한 재활에 공을 들이고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완쾌가 안됐어도 급하게 복귀시키는 일도 없다.

3년 전 모비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전지훈련에 갔을 때 일이다. 기러기 아빠였던 유 감독과 임근배 코치는 캠프 근처에 가족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호텔 생활을 하며 오전 8시 아침 식사부터 선수들과 함께했다. 모비스는 아침식사를 다 함께 하는 규칙이 있다. 유 감독은 “선수들이 PC게임이나 TV에 빠져 늦잠을 자는 일을 막을 수 있어 컨디션 조절에 효율적이다. 하루를 함께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모비스에 교체 선수로 합류한 테렌스 레더는 다혈질에 평소 아침식사를 안 했지만 예외가 없었다.

유 감독은 무명 선수, 한물갔거나 부상 전력이 있는 선수들을 키워내 모비스를 두 차례 정상으로 이끈 ‘저비용 고효율’의 대명사다. 모비스가 역대 최다인 5명의 우수 후보선수상 수상자를 길러낸 것도 그의 공이다. “수비할 때 50cm만 더 나가라” “왼쪽을 파는 게 90%이니 그쪽을 막아라”는 등 전술 마련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만수(萬手)다. 모비스 황열헌 단장은 “사심 없이 선수들을 냉정하게 이끈다. 리더십뿐 아니라 경기마다 10개 이상의 패턴을 준비하는 노력파”라고 평가했다.

유 감독은 “어려울 때 팀을 위해 희생해준 선수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감독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인데 바람직하지는 않다. 오래도록 선수들과 코트에 남고 싶다”며 웃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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