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볼트육상’ 된 세계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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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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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우승→세계신기록… 충격과 반전의 ‘볼트 드라마’

우사인 볼트(오른쪽 위)를 비롯한 자메이카의 남자 400m 계주 팀 4명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최종일인 4일 37초04의 이번 대회 첫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전자 기록판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자메이카는 2위 프랑스(38초20)와 3위 세인트키츠네비스(38초49)를 제쳤다. 볼트는 200m 우승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국은 세 번째 주자 다비스 패튼이 달리다 쓰러져 바통터치에 실패했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우사인 볼트(오른쪽 위)를 비롯한 자메이카의 남자 400m 계주 팀 4명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최종일인 4일 37초04의 이번 대회 첫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전자 기록판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자메이카는 2위 프랑스(38초20)와 3위 세인트키츠네비스(38초49)를 제쳤다. 볼트는 200m 우승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국은 세 번째 주자 다비스 패튼이 달리다 쓰러져 바통터치에 실패했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볼트의, 볼트에 의한, 볼트를 위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였다.

대회가 열린 9일 동안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달구벌은 들썩거렸다.

지난달 16일 볼트는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해 5월 대구 국제육상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뒤 1년 3개월 만이다. 볼트를 보기 위한 인파로 공항은 북새통이 됐다. 볼트의 입국은 대회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지난달 27일 대회가 개막하자 ‘볼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볼트가 이날 열린 남자 100m 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대구스타디움에 등장하자 4만5000여 석의 관중석에서는 큰 함성과 박수가 울렸다. 볼트의 동작 하나하나에 관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볼트는 자신을 향한 관심을 즐겼다. 관중의 함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 재미있는 포즈로 화답했다. 예상대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준결선에 진출했다. 남자 100m 우승 여부는 물론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볼트가 세운 세계신기록(9초58)을 얼마나 더 앞당길 수 있는지가 관심거리였다.

28일 남자 100m 결선.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모두가 볼트의 세계신기록 작성을 기대했다. 준결선에서 결승선 20m를 앞두고 속도를 줄이며 여유를 부린 볼트였다. 이변이라는 단어는 볼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경기 전 우승은 당연한 듯 미리 번개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관중의 흥을 돋우었다.

스타팅블록에 들어섰다. 관중은 숨을 죽였다. 준비를 알리는 ‘셋(set)’ 소리,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총성이 울리기 전 볼트가 스타팅블록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볼트는 자신의 부정출발을 알아챈 듯 10m 정도를 달려나가다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실격. 믿기 힘든 결과였다. 탄식이 스타디움을 뒤덮었다. 볼트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전광판 실격표시를 바라보며 ‘누구냐’라고 말했다.

볼트는 “시즌 내내 스타트를 집중 훈련했다. 예선부터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은 좋았다”며 “빨리 뛰고 싶어 안달이 나 부정출발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흥분한 상태에서 그냥 가자, 가자, 가자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때 ‘셋(set)’이라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를 ‘고(go)’로 헛들었다. 실수했다”고 털어놨다.

볼트는 경기 뒤 다음 날 오후까지 두문불출했다. 볼트는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정말 열심히 훈련해 왔기 때문이다. 보여줄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볼트는 “(그땐) 너무 흥분했고 긴장했다. 차분하게 경기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남자 200m와 400m 계주 훈련에 열중한 볼트는 3일 다시 스타디움에 나타났다. 장난스러운 동작과 여유로움은 그대로였다. 실격으로 인한 실망감과 분노는 없었다. 그 대신 볼트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이날 열린 남자 200m 예선과 준결선을 여유롭게 통과했다. 그리고 다시 결선 출발선에 섰다. 총성이 울리기 전 볼트는 단 두 가지만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최대한 빨리 달리자. 중간에 속도를 줄이거나 옆 레인의 다른 선수를 쳐다보는 일은 없었다. 제일 빨리 결승선을 통과했다. 19초40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4일 볼트는 마지막으로 스타디움을 찾았다. 남자 400m 계주 결선. 자메이카 마지막 주자로 나선 볼트는 37초04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세계신기록. 대회 2관왕을 달성한 볼트는 “나는 전설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볼트는 실격에서 2관왕, 그리고 세계신기록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연인원 80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본 세계 최대의 드라마였다.

대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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