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한화 정재원 ‘150km 쾌속 잠수함, 39번 워너비 임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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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1일 07시 00분


임창용 처럼 되고싶어 등번호도 39번
토요일 롯데전서 150km 놀라운 쾌투
야구 잘하려고 정재원으로 공들여 개명
1군 풀타임 목표“부모님께 효도 해야죠”


낯선 이름의 사이드암 투수가 6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힘차게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149km, 147km, 148km. 6회 2사 후 조성환에게 던진 3구째는 급기야 150km를 찍었다. 사이드암 투수에게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스피드. 주인공은 한화 정재원(27)이었다.

그는 19일 롯데와의 대전 시범경기에서 2.2이닝 동안 2안타 1볼넷 4탈삼진의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일약 ‘진흙 속의 진주’로 떠올랐다. 2004년에 데뷔한 후 처음 받는 스포트라이트다.

○스포트라이트 얼떨떨…수술후 구속 늘어

스스로도 “얼떨떨하다”고 했다. “물론 기분이야 좋지만 아직 이렇게 주목 받을 만한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시범경기 3경기에서 모두 홀드를 따냈고, 5.2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아냈는데도 그렇다. “사실 전지훈련 때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오키나와에서 세 번째 연습경기부터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 시범경기잖아요. 본 경기에서 잘해야 진짜죠.”

원래 강속구를 던지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2005년 어깨 수술을 받고 이듬해 군복무를 한 직후부터 차근차근 나아지기 시작했다. “재활하는 단계에서 운동량이 늘고 체계적으로 준비를 하게 됐어요. 또 예전에는 팔스윙이 굉장히 컸는데 2군에서 한용덕 투수코치님과 함께 교정도 많이 했고요. 스윙을 짧게 하니 볼도 빨라지고 제구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정종민에서 정재원으로…3형제 중 유일한 프로선수


입단은 ‘정종민’이라는 이름으로 했다. 안산공고가 배출한 프로야구 선수 1호였다. SK 에이스 김광현이 그의 3년 후배다.

하지만 그의 한화 입단을 기뻐했던 건 모교 뿐만이 아니다. 집안에도 경사가 났다. 두 명의 형과 함께 3형제가 모두 야구를 했지만 프로에 입단한 건 막내 정재원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큰 형은 유망한 타자였지만 고3 때 입은 부상 때문에 야구를 그만둬야 했고, 둘째 형도 고교를 졸업하면서 선수의 길을 포기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세 아들의 야구 뒷바라지를 했던 부모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서, 정재원이 희망을 안긴 것이다. 야구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는 형들은 늘 막내에게 전화로 “자신있게 던져라. 주눅 들지 마라”고 주문한다. 정재원은 “고생하면서 우리를 키워 주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꼭 올해는 자리를 잡고 싶다”고 했다.

개명도 “아들이 좋은 이름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부모님 뜻에 따랐다. 2009년 나가사키 마무리 캠프를 다녀와서 어렵게 개명 허가를 받아 냈다. 지난해에는 1군에서 단 12경기만 던졌으니 새 이름을 알릴 기회도 없었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다르다. 정종민이 아닌 정재원으로, 그가 어떤 선수인지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잡았다.

○그가 39번을 달고 있는 이유


‘한화의 임창용’이라는 새 별명에는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그가 지금 등번호 39번을 달고 있는 이유는 사실 임창용 때문이다. 39번은 바로 임창용이 삼성에서 ‘애니콜’로 이름을 날릴 당시에 유니폼에 새겼던 번호. 이전에는 임창용의 해태 시절 등번호인 37번을 사용했지만, 원래 주인인 투수 안영진이 군복무를 마친 후 돌려줬다. 대신 포수 이희근에게 39번을 달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이드암 중에서는 최고로 성공한 선배잖아요.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돼야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임창용은 일본 야쿠르트로 건너간 후 등번호 12번을 달고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정재원은 “야구를 조금 더 잘 하게 되면 나중에 친구 박노민(12번)에게도 부탁해 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스포트라이트에 들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그는 계속 강조했다.

“저는 지금 자리 잡은 투수가 아니잖아요. 아직 멀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요.” 올 시즌 목표도 마찬가지다. ‘홀드왕’도, ‘제 2의 임창용’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그저 1군에서 풀타임으로 한 번 뛰어 보는 게 먼저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단해 우리 나이로 스물여덟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못해 본 경험. 그걸 이룬 다음에야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는 마운드에 올라가면 지난해와 마음가짐이 달라요. 자신감도 훨씬 많이 커졌고,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도 생겼거든요.” 쑥스럽게 말하면서, 정재원이 활짝 웃었다.대전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사진제공 | 한화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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