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막으려다 자칫 팀 망가질수도…‘양날의 검’ FA 옵션의 득과 실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5일 07시 00분


LG,박용택 FA 계약을 통해 본 인센티브 논란

LG타자 박용택. 스포츠동아 DB
LG타자 박용택. 스포츠동아 DB
LG는 박용택과 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FA 계약을 했다. 보장금액보다 인센티브가 큰 계약조건은 ‘양날의 칼’이다.

‘먹튀 FA’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자칫 개인은 물론 감독과 팀 전체에 지나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FA 계약이 줄을 잇는다면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팀보다는 개인성적을 위해 야구를 할 수밖에 없다.

LG가 3일 프리에이전트(FA) 박용택과 계약하면서 보장액보다 인센티브가 더 많이 걸리는 독특한 계약을 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전례가 없었던 FA 계약 방식이다. 프로야구 FA계약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한다면 앞으로 프로야구 FA 계약의 새로운 전형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만약 실패한다면 LG는 또다른 실험을 했다는 평가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눈길을 모으는 계약방식이다.

○박용택의 계약 조건

박용택은 3+1년에 계약금 8억원과 연봉 3억5000만원의 조건에 사인했다. 표면적으로는 12억원의 옵션이 추가돼 4년간 최대 34억원을 받을 수 있는 계약.

여기엔 각종 옵션이 걸려 있다. 계약금부터 5+3억원. 3년간의 성적을 보고 4년째에 3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결국 3년간만 놓고 보면 계약금 5억원과 연봉 3억5000만원 등 총액 15억5000만원만 보장액이다. 인센티브가 이보다 더 큰 18억5000만원이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기로 LG와 합의한 박용택은 “보장금액이 50%에 못 미치는 수준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올해 연봉(3억1000만원)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사실상 보장된 금액은 전체 총액의 30% 정도라고 보면 된다”는 설명만 했다. 그렇다면 약 70%가 인센티브라는 얘기다.

박용택은 “많은 FA 선수들이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기 때문 아니겠느냐. 구단의 심정을 이해한다. 내가 야구를 잘 하는 수밖에 없다”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매년 골든글러브를 받는 성적이 아니면 인센티브를 따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토해낼 수도 있다”며 웃었다.

3억5000만원의 연봉에도 ‘마이너스 옵션’이 있다는 얘기다. 경기수나 타석수 등 일반적인 옵션만 아니라 타율, 홈런, 타점, 출루율 등 타격 부문 거의 전 항목에 차등적으로 줄줄이 옵션을 걸어놓은 상황이다.

○‘양날의 칼’ 인센티브 계약

인센티브 계약은 ‘양날의 칼’로 통한다. 구단으로서는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적인 측면에서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옵션 조항과 인센티브 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폐해는 커진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센티브 계약도 진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삼성 김응룡 감독(현 사장)은 외국인타자를 두고 “볼에도 무조건 크게만 휘두른다. 팀 승패는 안중에도 없다. 홈런과 타점에 옵션을 거는 계약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후 삼성의 FA와 외국인선수 계약에는 지나친 옵션 조항이 사라졌다. 타자에게는 경기수와 출루율 등 기본적인 옵션만 걸렸다. 그것도 선수가 부담을 가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퀸란은 2000년 현대에서 37개의 홈런으로 3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기록한 173개의 삼진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한 투수는 “퀸란은 홈런과 타점에 인센티브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유인구로 쉽게 삼진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센티브의 또다른 폐해

요즘 감독들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시즌 막바지에 치열한 순위다툼을 하더라도 감독들은 선수의 계약 내용을 숙지해야한다. 심심찮게 감독이 선수나 구단 직원을 불러 옵션 조건을 물어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라인업을 짤 때부터 골머리를 앓는다. 기록 하나에 수천만 원, 혹은 억대가 걸려 있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팀 분위기에 영향이 큰 베테랑을 기용하지 않는다면 팀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반대의 경우, 3할에 옵션을 걸어둔 타자가 정확히 3할을 채웠다고 치자. 남은 경기는 부상 등을 핑계로 뛰지 않으려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또한 타자는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팀배팅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히트앤드런과 같은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타율이나 안타, 홈런과 타점 등에 옵션이 걸린 타자라면 안타만 치려고 덤빌 수밖에 없다.

LG는 2008년 좌완투수 류택현과 FA 계약을 하면서 방어율에도 옵션을 걸려고 했었다. 류택현은 이렇게 얘기했다.

“1사 2루 위기에서 투수는 까다로운 좌타자를 1루를 채워도 좋다는 생각으로 유인구를 던질 때도 있다. 걸려들면 좋고, 아니면 다음 타자를 병살타로 유도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다음에 우타자가 등장해 교체됐는데, 다음 투수가 홈런을 맞으면? 내 방어율은 올라간다. 홈런 맞은 투수도 미안하겠지만, 내가 그 투수를 미워할 수도 있다. 팀워크는 엉망이 된다. 차라리 내가 안타 맞는 게 속 편하니까 정면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류택현의 설명을 들은 LG는 당시 방어율은 빼고, 경기수와 홀드 항목만 옵션으로 채택했다. 물론 변수가 많은 홀드까지 포함된 것도 웃기는 일이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상의 시나리오

LG는 외야에 흔히 말하는 ‘빅5’가 있다. 박종훈 감독으로서는 이들을 지혜롭게 기용해야 팀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전략상 박용택이 빠져야할 상황도 있다. 이럴 때 박 감독으로서는 괴로운 상황을 맞게 된다. 옵션의 금액이 적다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거액이 걸렸다면 선수 운용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박용택은 시즌 중에도 매 타석이 스트레스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시즌 막바지에 LG가 4강권에서 멀어진다면 오히려 모두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상위권에서 치열하게 순위다툼을 할 때 박용택이 빠져야하는 상황이라면 문제다. 선수도 감독의 눈치를 보고, 감독도 선수의 눈치를 본다. 대신 기용되는 선수도 미안해 눈치를 본다. 자칫 ‘LG의 박용택’이 아닌, ‘박용택의 LG’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옵션의 금액이 이처럼 큰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LG가 기다려야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박용택이 앞으로 4년간 한 시즌도 부진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다. 매년 수억 원이 걸린 옵션에 초연해지면서 팀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기를 강요할지도 모르지만.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