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소녀’ 임춘애의 金, 그것은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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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일 07시 00분


■ 아시안게임 ‘코리안 스타 열전’

전쟁의 상처 딛고 처음 뛰어든 아시안게임
최윤칠 첫 금메달은 스포츠강국의 신호탄이었다
역사 원신희·물개 조오련, 그리고 신궁 코리아
1990년엔 남북단일팀 탁구제패 뜨거운 감동 선사


한국은 아시안게임에서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처음 참가한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를 시작으로 2006년 제15회 도하 대회까지 불굴의 의지와 도전으로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긴 전설적 스타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큰 족적을 남긴 빼놓을 수 없는 스타들을 추억해본다.

1954년 마닐라 대회 육상 1500m에서 우승한 최윤칠(가운데).
1954년 마닐라 대회 육상 1500m에서 우승한 최윤칠(가운데).

● 아시안게임 최초 금메달 최윤칠

1954년 마닐라 대회 2일째, 육상 남자 1500m에 출전한 최윤칠이 맨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자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이 대회 첫 금메달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건국 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통틀어 국제종합대회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기도 했다. 태극기가 처음으로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운동장 구석구석에서 “코리아” 함성이 터졌다.
● 아시안게임 최초 3관왕 원신희

원신희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주름잡은 역사였다. 1962년 페더급 세계주니어신기록을 작성했고, 1978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신기록만 무려 57차례나 갈아치웠다. 특히 1974년 제7회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역도는 물론 한국 스포츠의 새 역사를 썼다. 북한과 중공(중국)이 처음 참가하면서 사상 첫 남북대결이 이뤄진 대회. 원신희가 라이트급에 출전해 인상과 용상, 그리고 합계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한국은 금메달 16개를 획득, 금메달 15개의 북한을 아슬아슬하게 제치고 4위에 오를 수 있었다.

1970년 방콕대회와 1974년 테헤란 대회 수영에서 총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조오련.
1970년 방콕대회와 1974년 테헤란 대회 수영에서 총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조오련.

●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1970년 제6회 방콕 대회. 전남 해남 출신으로 홀로 수영을 익히던 조오련은 수영연맹에 발탁된 뒤 1년 반 만에 참가한 이 대회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2관왕에 오르는 신화를 썼다. 이어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도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영의 변방국가를 아시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수영 영웅은 지난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1986년 제10회 서울아시안게임.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 수영의 최고 스타 최윤희는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앞선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 언니 최윤정과 출전해 3관왕을 차지한 바 있다. 200m 배영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관왕에 오른 그녀는 5000여 관중의 박수에 손을 흔들다 뜨거운 눈물을 흘려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임춘애의 금빛 스퍼트1986년 온 국민을 울린 17세 소녀의 영화 같은 질주. 임춘애(왼쪽)는 서울아시안게임에서 폭발적인 스퍼트를 앞세워 3관왕을 차지하며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스포츠동아 DB
임춘애의 금빛 스퍼트
1986년 온 국민을 울린 17세 소녀의 영화 같은 질주. 임춘애(왼쪽)는 서울아시안게임에서 폭발적인 스퍼트를 앞세워 3관왕을 차지하며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스포츠동아 DB

● 감동의 인간스토리 임춘애

서울아시안게임에서 17세 소녀 임춘애는 감동 스토리를 만들었다. 육상 여자 800m 결승에서 아쉽게 2위에 그쳤지만 1위로 통과한 인도 선수가 레인을 침범한 것으로 드러나 실격패하면서 금메달을 따냈다. 1500m 결승에선 드라마 같은 스퍼트로 다시 1위로 골인했다. 3000m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임춘애는 한국 육상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3관왕을 차지했다. 가녀린 몸매의 임춘애는 인터뷰에서 “평소 즐겨먹는 음식은 라면”이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이 와전돼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감동 스토리로 연결되면서 국민영웅이 됐다. ‘라면소녀’는 현재 ‘칼국수집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여고생 신궁 계보는 1978방콕대회 개인전에서 17세의 김진호가 금을 따면서부터 시작됐다.
여고생 신궁 계보는 1978방콕대회 개인전에서 17세의 김진호가 금을 따면서부터 시작됐다.

● 그밖의 스타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체전 결승 4대4 상황에서 한국의 마지막 카드 안재형은 중공의 후이준을 꺾으면서 영웅이 됐다. 사상 최초로 중공의 철옹성을 넘어선 역사적 순간에 국민 모두 열광했다. 제3회 대회에서 마라톤 우승 후 졸도해 시상식마저 4시간을 연기시킨 이창훈, 1970년과 1974년 투포환 2연패를 달성하며 ‘아시아의 마녀’로 칭송받은 백옥자, 1978년 처음 정식종목이 된 양궁에서 여고 2년생으로 금메달 과녁을 명중시킨 김진호, 1990년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해 북한선수와 금메달을 합작한 탁구의 김택수와 현정화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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