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야구 롤러코스터] “구닥다리 대구구장선 우승 세리머니도 안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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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1일 07시 00분


뜨거웠던 가을이 지나갔어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는 그야말로 ‘가을 야구의 전설’. 매 경기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승부가 이어지면서 야구팬들의 기억에 깊은 잔상을 남겼어요. 그 여파 때문일까요. 한국시리즈는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모르게 싱겁게 지나가 버렸어요. SK가 4연승으로 우승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외에는…. 어쨌든 올해도 그라운드 안팎에서 즐겁고도 황당한 일들이 이어졌어요. 2010년 포스트시즌. 그 뒷얘기를 모아봤어요.○암흑 속의 우승 세리머니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난 직후였어요. SK 선수들 서로 샴페인 세례하고 신 났어요. 성숙한 대구 팬들도 승자와 패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 보내요. 그런데 조명 몇 개가 꺼져있어요. 그라운드 안은 어두워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안가요. 우승 세리머니는 암흑가에서 치러졌어요. 다음 날 신문사진들도 컬러인지 흑백인지 구분이 안가요. KBO 얘기로는 예년에도 조명을 몇 개 껐대요. 우승 확정 직후, ‘We are the champion’이 울려 퍼지는 동안 구장 하늘 위로 쏘아 올리는 폭죽 때문이에요. 조명 켜져 있으면 불꽃놀이의 화려한 색채가 퇴색된대요.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어요.

하지만 구닥다리 대구구장은 조명의 조도가 너무 낮아서 문제였던 거래요. 아, 대구구장. 적은 수용인원과 협소한 시설 때문에 원성이 자자했는데, 이제 우승세리머니까지 방해해요. “새 야구장 짓겠다”던 대구시장, 경기장에 와 있던데 약속 지킬 지 두고 봐야겠어요. 만약 내년 한국시리즈 최종전도 대구에서 한다면, 우승 폭죽 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곰 덕분에 신난 비룡

19일 한국시리즈 4차전 막판. 우승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 SK 구단의 한 직원이 떫은 입맛을 다셔요. “대구에서 끝나 아쉽네. 대구는 입장수입이 적어서 (SK가 받을) 배당금도 적은데 말이야. 잠실에서는 한 게임만 해도 (입장수입이) 5억5000만원이 넘는데.” 우승은 떼논 당상이라 여겨서인지 주판알까지 튕기며 여유 부려요. 하지만 삼성 관계자들 들으면 큰일 날 소리에요. 안방에서 단 한 게임도 못 이기고 철저하게 짓밟히는 바람에 안 그래도 속이 숯덩이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 얘기 듣고 가장 속 쓰릴 곳은 두산이에요. ‘미러클’ 두산의 뚝심 덕에 올해 준PO랑 PO는 나란히 5차전까지 이어지면서 사상 최고의 명승부, 사상 최대의 열기를 자랑했거든요. 올해 포스트시즌 입장수입, 지난해 이어 역대 2번째로 많은 57억원이에요. 그 중 SK가 한국시리즈 4게임 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은 14억원뿐이고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비룡이 꿀꺽한 꼴이에요.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존경도 받는 법인데, SK에는 없는 마인드에요.

○침묵에 잠긴 삼성

한국시리즈에서 힘 한번 못 써보고 완패한 삼성은 침묵 모드에요. 선수도, 구단 직원도 하나같이 “창피하다”는 말만 해요.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는 삼성의 자존심으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니까요.

하지만 “차라리 잘 됐다”는 의외의 반응도 있어요. 감독이 지나치게 신격화돼 있는 팀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거예요. 선동열 감독이 대스타 출신인데다 사령탑으로 취임한 첫해부터 우승을 달성하면서 줄곧 승승장구해왔으니 이번 패배가 오히려 보약이 될 수도 있으리란 얘기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기회에 삼성 구단도 재정비가 필요해요. 4차전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넋 놓고 그라운드만 쳐다보는 직원들의 모습은 차라리 선수로 함께 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을 남겼어요.

○이만수 코치 인기 유지는 야구 게임 덕분?

SK 이만수 수석코치는 여전히 대구 최고의 스타였어요. 삼성의 푸른색이 아닌 SK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관중들의 환호는 여전했어요. 3차전을 앞두고는 관중들이 “이만수! 이만수!”를 연호하는 이색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더 놀라운 건 초등학생 야구팬들도 이 코치를 보고 “이만수 코치님 사인해 주세요!”라며 달려들어요. 이 코치가 삼성에서 은퇴한건 1997년이에요. 요즘 초등학생들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어요.

아무리 삼성의 첫 영구결번 주인공이라지만 초등학생들이 어떻게 이 코치를 알까요? 이 코치도 궁금해 직접 물었어요. “나를 어떻게 알지? 아빠가 알려줬나?” 그런데 모두들 아니래요. 이어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에요. “야구게임에서 코치님 직접 쓰는데요. 은퇴한 선수 쓰려면 돈 주고 사야해요. 코치님 진짜 비싸요. 맞다 맞다 한 30만원 한다 아닙니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야구게임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해요.

○뇌진탕 때문에 어지러웠던 채태인의 가을

플레이오프 때는 두산 김현수, 한국시리즈 때는 삼성 채태인. 맞아요. 포스트시즌에 부진해서 감독과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중심 타자들이에요. 가을이 ‘시련의 계절’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옆에서 자꾸 ‘힘 내라’, ‘힘 내라’ 하니까 더 부담이 됐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김현수는 4차전에서 펜스를 직격하는 중요한 적시타를 쳐서 잠실을 환호의 도가니에 빠뜨리기라도 했어요. 하지만 채태인은 끝까지 삼진, 삼진, 또 삼진. 방망이에 공을 맞혀보지도 못 했어요.

사실 원인이 있긴 있었어요. 시즌 막바지에 플라이 타구를 잡다 뒤로 넘어져서 땅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그런데 PO 때 홈으로 대시하다가 상대 포수 무릎에 또 머리를 부딪힌 거예요. 뇌진탕 무서운 거, 지난해 김태균이 이미 보여줬잖아요. 그래도 한 건 해보려고 열심히 나가긴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어요. 오죽하면 절친한 동료 박석민이 ‘채현수’, ‘김태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을까요. 어쨌든 중요한 가을 잔치에서 헛방망이질만 하는 아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두 선수, 내년에는 둘 다 가을에 펄펄 날길 기원할게요.

스포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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