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그대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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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7시 00분


아름다운 퇴장

“후배들아 안녕!” 어쩌면 SK 선수들은 떠나가는 선배를 위해 더 이를 악물고 우승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1년전, 이미 ‘현역 은퇴’를 예고했던 SK 김재현이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뒤 동료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대구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후배들아 안녕!” 어쩌면 SK 선수들은 떠나가는 선배를 위해 더 이를 악물고 우승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1년전, 이미 ‘현역 은퇴’를 예고했던 SK 김재현이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뒤 동료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대구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이순간 언제 오나 했는데 진짜 왔네…”
후배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큰 영광
떠나는 순간까지도 입가에 환한 미소
김재현(35)이 타석에 섰다. SK가 3-0으로 앞선 6회 1사 1루였다. 볼카운트 1-1에서 삼성 차우찬의 3구가 바깥쪽으로 멀리 흘러나가자 그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유인구를 잘 골라냈을 때의 오랜 습관. 그리고 5구째에 방망이를 힘껏 돌렸다. 삼성 2루수 박진만이 몸을 날려 막지 않았다면 안타가 됐을 타구였다.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김재현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SK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2010년 10월 19일의 가을 밤, 김재현의 야구 시계도 천천히 멎었다.

그는 1994년 프로야구를 호령한 LG의 신인 3총사 중 유일한 고졸이었다. 억대 계약금, 부드러운 외모, 악착같은 투지, 그리고 호타 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 갓 데뷔한 19세 선수에게서 일찌감치 스타의 풍모가 넘쳐 흘렀다. 시련을 겪었을 때조차 늘 당당했던 그다. 2002년 고관절 부상으로 은퇴 위기를 맞았지만,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2루타성 안타를 치고 절뚝이며 1루까지 걸어가는 투혼을 보여줬다. 또 LG에서 구단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종용하자,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 동시에 미련없이 떠났다. 이듬해 수상한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는 통렬한 카운터펀치이자 곧추세운 자존심. 그리고 LG가 4강과 멀어지는 동안, 그는 SK 유니폼을 입고 세 번의 우승 반지를 꼈다. 떠나보낸 LG에게도, 맞이한 SK에게도, 김재현은 ‘존재감’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그는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다. 이 순간이 언제 오나 했는데 진짜 오긴 오네”라며 애써 웃었다. 그리고 “SK라는 팀에서 하루라도 더 뛰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선수들과 함께 뛰다 은퇴할 수 있어서 내 자신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심은 확고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2010 시즌 후 은퇴’를 발표한 후 숱하게 번복 권유를 받아왔지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이렇다. “그건 내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김재현답게 울지 않았다. 박정권이 다가와 샴페인을 퍼부어도, 후배들이 한데 뭉쳐 헹가래를 해줘도, 환한 미소가 입가에서 떠날 줄 몰랐다. 오히려 펑펑 우는 동료들을 다독이고 우승 세리머니를 주도하면서 마지막까지 주장 역할을 했다. “너무 행복하게 은퇴하게 됐다. 나같이 복 많은 선수가 또 있을까 싶다”는 그의 마지막 걱정. “아직 아시아시리즈 훈련 스케줄이 안 나와서 당장 내일 무엇부터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내일부터 훈련시키면 어떡하지?” 역시, 그는 뼛속까지 ‘김재현’이다.

대구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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