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균의 7080 야구] 여관방 숙소로 샌 연탄가스…1977년 대표팀 ‘아찔한 추억’

스포츠동아 입력 2010-09-11 07:00수정 2010-09-11 07:5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국가대표팀 엔트리가 발표됐다. 국가대표가 지니는 상징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주변환경이나 여건은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차이가 크다. 요즘은 국가대표팀이 구성되면 드림팀이라는 세련된 호칭을 붙여주고 지원도 ‘꿈’처럼 해주던데 필자가 뛰던 그 시절엔 말그대로 ‘국가대표’였다.

70년대 국가대표팀의 에피소드다. 77년 10월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월드컵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팀은 서울 도봉동에 있는 한 여관을 잡고 합숙훈련을 할 예정이었다. 고교와 대학선발을 거쳤지만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필자는 자부심에 설레는 마음으로 여관으로 향했다. 첫날 룸메이트는 배대웅 선배.

그 첫날이었다. 당시 도봉동의 저녁 날씨는 꽤나 쌀쌀한 편이었는데 마음씨 좋은 여관주인이 딴에는 선수단을 특별히 배려한다고 방마다 연탄불을 넣어줬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여름 내내 불을 피우지 않았던 연탄아궁이가 결국 탈이 났고 내 방에 연탄가스가 새어 들어왔다. 잠결에도 너무 머리가 아파 새벽에 깸과 동시에 ‘연탄가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배대웅 선배를 깨우고 거의 기다시피해서 김응룡 감독님 방으로 찾아갔다. 시간은 새벽 4시 무렵. 놀라서 잠이 깬 감독님은 우리를 데리고 큰 길로 나가 차를 잡으려고 했지만 막 통금이 해제된 그 시간이 택시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점점 당황하던 김 감독님은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지나가는 화물차를 우격다짐으로 가로막다시피 해서 근처 녹십자병원까지 갈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덕분에 괜찮아졌으나 지금 생각해도 참 황당한 사건이었다.

관련기사
그 사건 이후 대표팀의 숙소는 도동봉의 여관에서 을지로에 있는 모 호텔로 승격됐다. 단순한 추억으로 돌리기엔 아찔한 사건이었고 당시 대표팀의 열악한 지원상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응룡 감독님의 당시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을 참을 수 없다. 호랑이처럼 엄격한 모습을 한순간도 잃은 적이 없던 감독님이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코끼리만한 덩치로 차를 잡기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 광경이란…. “고맙습니다. 감독님!”

그런 노력들 덕분이었는지 아무튼 당시 대표팀은 그 대회에서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세계대회 최초 우승이라는 영광을 맛봤다.임 호 균

삼미∼롯데∼청보∼태평양에서 선수로, LG∼삼성에서 코치로, MBC와 SBS에서 방송해설을 했다. 미국 세인트토머스대학 스포츠행정학 석사. 선수와 코치 관계는 상호간에 믿음과 존중, 인내가 이루어져야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