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빛가람 “내 꿈은 대표팀 1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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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3일 07시 00분


조광래호 황태자 만나보니…

윤빛가람이 11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윤빛가람은 하루가 지났지만 자신의 대표팀 데뷔골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듯 했다.수원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윤빛가람이 11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윤빛가람은 하루가 지났지만 자신의 대표팀 데뷔골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듯 했다.수원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지성형 “잘해라”한마디 큰힘…백지훈형은 오랜 우상

3년 슬럼프 겪으며 ‘평범한 선수 되기 싫다’ 오기 생겨

고교시절 행운의 등번호 14번 대표팀서도 꼭 달고싶다■ 빛가람 그 이름이 궁금해

윤빛가람이 11일 나이지리아 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리며 깜짝 스타로 떠오르자 그의 독특한 이름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기 드문 석자 이름인데다 ‘빛가람’이라는 뜻도 범상치 않다. 빛가람은 빛과 가람을 합친 것으로 ‘빛을 내며 흐르는 강’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 윤빛가람은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셨는데 좀 독특하게 지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에는 이름이 특이해서 놀림을 많이 받았다. 창피해서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축구선수가 되고 보니 사람들이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좋더라”며 웃음을 지었다.

윤빛가람(20·경남FC)은 11일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린 뒤 “골 넣은 게 실감이 나느냐”고 묻자 “침대에 좀 누워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하루가 지났다. 12일 다시 만난 그는 “막상 침대에 누워보니 어땠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잠을 못 자서…”라며 수줍게 웃음 지었다.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곯아떨어지는 데 새벽 2시까지 정신이 말똥말똥 했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3시에 다시 깨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소속 팀 합류를 위해 창원으로 내려가는 윤빛가람과 김포공항 내 한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겸한 인터뷰를 했다.

○실력의 60%% 밖에 발휘 못해

득점 순간 머릿속은 백짓장이 됐다. 경황이 없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너무 얼떨떨해서 K리그에서 골 넣었을 때랑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조광래 호의 황태자’로 떠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아직은 낯간지럽다. 고작 1경기를 치렀을 뿐이고 무엇보다 득점은 했지만 자신의 경기 내용 자체에 만족하지 못해서다.

“실력의 60%% 정도 밖에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요.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하지 않아도 될 잔 실수가 많았어요. (조광래) 감독님이 경기 끝나고 특별한 이야기는 없으셨는데 아마 성에 안 차셨을 것 같아요.”

윤빛가람이 자신의 사진이 1면에 난 8월12일자 스포츠동아를 들어 보이며 쑥스럽게 웃고 있다.
윤빛가람이 자신의 사진이 1면에 난 8월12일자 스포츠동아를 들어 보이며 쑥스럽게 웃고 있다.


○재도약을 위한 3년

윤빛가람은 부경고등학교 시절 ‘부동의 에이스’였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U-17 청소년월드컵 때도 가장 주목 받았다.

그러나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시작됐다. 고교졸업 후 중앙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컨디션 난조와 잦은 부상으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다.

그렇게 부진에 빠져 있던 시간이 3년. 윤빛가람 없이도 한국축구는 승승장구했다. 그와 함께 U-17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민우(20·사간 도스)는 작년 이집트 U-20 청소년월드컵 8강에 오르며 스타가 됐다. 또래 김보경(21·오이타)과 이승렬(FC서울·21)은 6월 남아공월드컵까지 참가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더 올라서기 위한 3년이 아니었나 싶어요. 특히 (김)민우 형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나는 지금 그냥 평범한 선수가 돼 버렸다는 생각에 더 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오기도 생겼어요.”

윤빛가람은 올해 경남에 입단하며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2년으로 잡았다. 조광래 감독도 면담에서 “2년 후 국가대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조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면서 그도 전격 발탁됐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는데 그 때야 내가 정말 대표선수가 됐다는 걸 느꼈죠. 하지만 프로에서 감독님의 제자였기에 주위의 시선 때문에 부담감도 많았어요. 아마 감독님도 그러셨을 겁니다.”

○신기했던 박지성, 우상이었던 백지훈

대표팀 소집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뛰어난 선배들과 함께 한 훈련을 잊지 못한다.

특히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는 함께 뛰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TV로만 보던 분인데 이렇게 같이 훈련할 줄은 몰랐죠. 상상해 본적도 없죠. 경기 당일 날 (박)지성 형이 웃으면서 ‘잘 해라’라고 해 줬는데 짧은 한 마디였지만 큰 힘이 됐어요.”

오랜 우상도 만났다. 축구 센스와 기술이 뛰어난 백지훈(25·수원)은 그가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선수. 그러나 롤 모델이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쑥스러워서요. 제가 낯을 좀 가려요. 다음에 뵈면 꼭 제대로 인사드리고 싶어요.”

○대표팀 14번의 꿈

목표를 묻자 그는 “소속 팀이든 대표팀이든 기회가 온다면 계속해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지동원(19·전남)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K리그 신인왕도 욕심이 난다.

그러나 마음 속 깊숙하게 묻어둔 오랜 꿈은 바로 ‘대표팀 14번’이다.

“고등학교 때 14번 달고 게임을 잘 했거든요. 대표팀 되면 꼭 14번을 달고 싶었어요. 제 작은 꿈입니다.”

그는 이번에 대표팀에서 24번을 배정받았다. 언젠가는 대표팀에서도 당당하게 원하는 등번호를 택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김포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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