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철이 전술이…” 할머니팬 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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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3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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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출신 89세 이지영 할머니
현대 경기땐 어김없이 ‘따르릉’


“오늘 (김)호철이가 전술을 제대로 짜지 못했어.” “세터가 볼을 너무 낮게 올려줘.”

현대캐피탈 배구단 직원들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꼭 해야 하는 부과 업무가 있다. 열혈 팬을 자처하는 이지영(89) 할머니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숙제 아닌 숙제는 지난 시즌부터 시작됐다. 서울 은평구의 모 실버타운에 머물고 있는 이 할머니는 매 경기가 끝나면 구단 사무국에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훈수를 둔다. 팀 명칭은 꼭 ‘우리’라고 한다.

V리그 정규시즌 때는 물론, 대한항공과 플레이오프와 현재 진행 중인 삼성화재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게임을 하고 패한 챔프 1차전에서 이 할머니는 “집중력에서 우리가 졌다”며 “우리가 잘하는 블로킹은 다 어디 갔냐”고 아쉬워했고, 2차전 3-0 승리 후에는 “오늘 우리가 잘한 게 아니라 삼성화재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단다.

이쯤 되면 여느 전문가 뺨치는 수준.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 할머니는 일제 시대에 배구 선수로 뛰었다. 바람 불고 자갈 가득한 운동장에서 배구를 했던 이 할머니는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느슨한 플레이를 하면 “요즘 애들은 정신이 빠져있다”고 따끔히 충고한다. 비록 자신은 어려운 환경으로 계속 선수로 남을 수 없었지만 배구 열정은 식지 않았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이 할머니를 경기장으로 여러 차례 모셔오려고 했지만 홈 코트가 천안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며 “내년에는 홈이 어렵다면 서울(장충체육관)이라도 꼭 VIP로 모시겠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천안|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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