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의 외로운 1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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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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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이채원(29·하이원)은 5일 끝난 전국겨울체육대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클래식 5km, 프리스타일 10km, 복합, 15km 계주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그는 겨울체전 통산 45개의 금메달로 알파인 스키의 허승욱이 갖고 있던 기록(43개)도 넘어섰다.

이채원은 중학교 1학년 때 크로스컨트리를 시작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아 올해까지 국가대표만 13년째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 출전했고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에도 개인 10km와 7.5km×2 추적 경기에 나선다.

그야말로 국내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국내 대회에서 프리스타일 10km 경기를 하면 2위와 3, 4분씩 차이를 내는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그는 2006년 토리노 대회 10km 클래식에서 70명 중 62위에 그쳤고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인기 종목의 외로운 1인자들

이채원에게 겨울체전 최다 금메달 기록을 내준 허승욱도 이채원과 처지가 비슷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키하면 허승욱을 떠올린다. 그는 1987~2004년까지 국가대표로 뛰며 1988년 캘거리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까지 5회 연속 올림픽 무대에 섰다. 국내 대회에서는 1등을 도맡아하던 그였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늘 하위권이었다.

이채원, 허승욱처럼 겨울 종목에는 유난히 '고독한 1인자'가 많다. 밴쿠버 올림픽에 사상 처음으로 봅슬레이 4인승 출전권을 따낸 강광배(37·강원도청)는 10년 넘게 한국 썰매를 힘겹게 끌고 왔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때 루지 대표로 2002년과 2006년에는 스켈리턴 대표로 나섰다. 남들이 보기엔 얻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모든 것은 꿈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물 위에도 외로운 최강자가 있다. 이순자(32·전북체육회)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체전 10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카누 K-1 500m에 출전했지만 조별 예선 꼴찌로 탈락했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자력 출전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도전은 계속된다

외로운 1인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운명으로 삼은 종목은 대부분 홀로 달리는 운동이다. 또 자신의 종목처럼 힘겨운 삶을 홀로 이겨내야 한다. 변변한 지원도 없이 대회에 나가 고생하기 일쑤다. 국내에서는 최강자로 불렸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좌절의 연속이다. 그들을 이을 후배가 쉽게 나오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가장 잘 들어맞는 공통점은 역경 속에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어찌 보면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하다. 다른 국내 선수보다는 지나치게 잘하고 세계적 선수들보다는 뒤처진 경계인.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경계에 있다. 많은 관심을 보내지는 않지만 가끔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외로운 1인자들은 "바람을 가를 때 쾌감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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