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센터 이창수(196cm)는 20년 넘는 농구 인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이 없다. 특히 외국인 용병들이 주전 센터를 독식하는 프로농구에선 ‘백업’, 즉 후보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선배-동료 떠난 코트 홀로 지키려니 쓸쓸 나에겐 한경기 한경기 모두가 특별해요
시간은 잘도 흐른다. 1990년대 초중반 뜨거웠던 농구대잔치 시대에 이어 1997년 시작된 프로농구는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한때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스타도, 별 빛을 못 본 후보 선수들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힘에 밀려 하나둘 떠나간 코트. 그곳에 아직 그는 버티고 있다. 올해 나이 41세. 프로농구 국내 최고령이다.
20일 수화기를 통해 만난 그는 나지막하고 착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프로농구가 시작되면서 외국 선수들이 센터를 독차지하니까 아무래도 국내 선수 중에선 센터를 하려고 하는 선수가 별로 없었거든요. 말하자면 틈새시장을 잘 파고든 거죠.”
화려한 스타는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19일 전자랜드전에서 올 시즌 최장인 29분 37초를 뛰었고 자신의 시즌 최다 득점(6점)을 올리는 한편 상대 공격의 핵인 서장훈을 잘 막아 팀 승리를 도왔다.
지난해 모비스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뒤 은퇴의 기로에서 다행히 LG로 와 선수 생활을 연장한 그는 “전자랜드전에 유난히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한 경기 한 경기가 모두 특별하다”고 말했다.
LG 강을준 감독은 고민 끝에 그를 불렀는데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지난 시즌보다 두 배 가까운 경기당 평균 11분 50초를 뛰고 평균 득점과 리바운드도 지난 시즌 1.2점, 0.6개에서 2.3점, 1.8개로 좋아졌다.
강 감독은 “원래 수비가 좋은 선수인데 요즘 더 좋아졌다. 주로 서장훈, 김주성(동부), 하승진(KCC) 같은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막는 역할을 맡기는데 무척 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항상 열심이고 몸 관리도 철저히 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것.
1990년대 초반 이창수는 강 감독과 2년여간 같이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다. 경희대를 졸업하고 실업팀 삼성에 입단했을 때 네 살 많은 강 감독이 팀 고참 선수로 뛰고 있었던 것. 강 감독은 “까마득한 옛날인데 그가 아직도 뛰고 있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사실 이창수는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B형 간염 보균자. 1996년 처음 간염 진단을 받은 이후 요즘도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약물로 병을 다스린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랄까. 간염 진단 이후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습관이 오히려 그의 ‘장수’를 도왔다. 그는 “체력적으로 한 경기에 15∼20분 뛰는 것은 아직 문제없다”고 말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은 게 소망이다.
농구계에 친한 선수가 있느냐는 물음에 목소리가 작아졌다. “예전엔 있었는데 지금은 주위에 아무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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