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샛별 오지영 “주무기는 벙커샷…‘세리키즈’ 듣기 좋아요

  • 입력 2009년 8월 21일 09시 35분


가난에 해진 장갑 테이프로 말아 사용… 컵라면 먹으며 하루 1000개씩 연습볼 예뻐졌다고요? 안경만 벗었을 뿐인데

미 LPGA 투어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시대를 지나 신지애, 오지영, 김인경 등이 리더보드 상단을 꿰차고 있다. 향후 10년 이상 LPGA에서 한국골프의 위상을 드높일 대표주자들이다.

지난해 스테이트팜 클래식 우승에 이어, 지난 5월 사이베이스클래식 우승으로 스타덤에 오른 오지영(21·마벨러스웨딩)이 1년 여 만에 국내 대회 출전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

21일부터 제주도 더 클래식 골프장에서 열리는 KLPGA 투어 넵스 마스터피스 출전을 앞두고 서울 청담동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1승보다 소중한 2승

2007년 LPGA 투어에 데뷔해 1년 간 씁쓸함을 느낀 오지영은 데뷔 2년차인 지난해 7월 기다리던 첫 승을 신고했다.

뒷심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던 그가 오기로 만들어낸 귀중한 첫 승이다.

꿀맛 같은 첫 승이지만 만족할 오지영이 아니다. 힘들었던 과거와 그가 골프와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1승은 시작에 불과하다.

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 중 우승이 없는 선수가 대다수다. 평생 우승 한번 못해보고 필드를 떠나는 선수가 부지기수다.

1승을 올렸더라도 2승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선수도 태반이다.

LPGA 선수에게 2승은 롱런의 척도와 같다.

첫 승 테이프를 끊은 오지영은 2승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개월 만인 지난 5월 사이베이스 클래식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오지영은 “2승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외국의 팬들도 많이 알아본다. 이제는 언제든지 또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목표인 메이저 대회 우승도 머지않은 듯 하다.

○눈물 젖은 장갑

오지영의 주니어 시절 얘기는 부친 오현근(51) 씨에게 들었다. 지난해 7월 첫 승을 달성했을 때, 그의 감춰졌던 과거사가 알려졌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미국으로 떠난 사연까지 잔잔한 감동을 줬다. “우리 형편에 골프하면 안됐다.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난 뒤 사는 게 막막했다. 그런 와중에 지영이는 계속해서 골프를 하고 싶다고 졸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오 씨는 지난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 진다며 옛 얘기를 들려줬다. “한번은 장갑을 사줬는데 그 후 6개월 동안 장갑 사달라는 얘기가 없더라. 그래서 장갑이 어떻게 됐나 봤더니 손가락이 끝부분이 다 찢어져 테이프로 돌돌 말아놓은 걸 계속 사용하고 있더라. 그걸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더라.” 부모님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오지영은 장갑을 사달라고 하기가 미안했다. 그때 그런 딸의 모습을 보고 부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장갑을 사달라고 하면 골프를 그만 두라고 할까봐 다 떨어질 장갑에 테이프를 붙여서 쓰고 있었다. 부도가 나서 생활이 힘든 시기였기에 뭐 하나 넉넉하게 사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딸이 그토록 원하는 일인데 도둑질이라도 해서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지영은 그 때부터 연습벌레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는 날이 많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늦게까지 연습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연습장으로 데리러 왔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몇 시간을 더 연습하다가 프로에게 혼이 나고는 연습을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한번 골프채를 잡으면 진이 빠지기 전까지 절대 골프채를 놓지 않는 악바리였다. 이런 오기는 부친도 인정한다.

오 씨는 “지영이는 재능이 뛰어나기 보다 노력파다. 거의 하루에 1000개 씩 연습볼을 치는 걸 보고 레슨 했던 프로도 질렸다고 했을 정도다. 내가 봐도 정말 지독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미국에서도 지독한 연습벌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오지영이 고3을 앞두고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에머슨퍼시픽그룹의 이중명 회장이 오지영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그의 후원자로 나섰다.

유학도 이 회장의 지원으로 떠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키워온 악바리 근성은 미국에서도 인정받았다. 미국으로 건너 간 직후 출전했던 6개 대회에서 우승을 싹쓸이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함께 연습하던 동료들은 그의 모습에 질투를 했을 정도다.

연습벌레 이미지도 그대로였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던지 몇 달 새 샌드웨지도 2개나 내다 버렸다.

벙커 샷이 특기라는 오지영은 “하도 벙커 샷 연습을 많이 해서 솔이 금방 달았다. 벙커 샷 연습을 시작하면 최소 100개는 해야 직정이 풀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연습은 해도 해도 부족했다. 시간이 아까웠던 오지영은 숙소에서 연습장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 대신 자전거를 이용했다.

셔틀버스를 타면 정해진 시간 이외엔 연습을 할 수 없었기에, 늦게까지 연습하기 위해 골프백을 등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연습장까지 이동했다. 그렇게 5개월 넘게 다녔다.

하지만 오지영도 놀라워하는 진짜 연습벌레는 따로 있다. 선배 김영이다. 오지영은 “김영 언니를 보면 나도 놀랄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한다. 정말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저도 스물 한살이예요

프로골퍼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오지영도 21살의 숙녀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대회가 없는 날이면 어렸을 때부터 함께 골프를 쳐온 동료들과 자주 만난다. 술도 마시고 쇼핑도 한다.

오지영은 “술은 잘 마시지 못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즐겁다. 한국에 와서도 (최)나연이와 (박)인비랑 신촌에서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5개월 여만에 한국에 온 오지영은 “친구들과 더 재미있게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조금 밖에 놀지 못해 아쉽다”며 빙그레 웃었다.

-1라운드에서 만나기 싫은 상대는?

“훌리에타 그라나다 선수다. 플레이가 상당히 늦는 편이다. 그런 선수와 1라운드에서 함께 플레이하면 내 경기 감각을 찾기 힘들다. 그라나다와는 2번 같이 플레이했는데 모두 컷 탈락했다. 아직 내가 부족해서 일수도 있지만 자꾸 말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지간하면 같이 플레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뻐졌다는 소리가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별다른 건 없다. 다만 안경을 쓰다가 지난 겨울부터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로 바꿨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예뻐졌다고 한다.”

-외모 중 어디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나?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머릿결이 많이 상한다. 그래서 머리와 피부에 많은 신경을 쓴다. 머릿결이 나빠지는 걸 보면 속이 상한다.”

-제일 자신 있는 샷은?

“벙커 샷이다. 벙커에서 파 세이브율이 90%% 이상이다. 엄청나게 연습한 덕분이다. 역시 연습이 최고다.”

-‘세리 키즈’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아무에게나 ‘세리 키즈’라고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불러주는 것 자체가 실력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담스럽지 않다. 듣기 좋은 말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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