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을 말하다] 은퇴 신윤호의 은사 추억

  • 입력 2008년 11월 8일 08시 23분


“글쎄, 9.11때 ML 못볼까 걱정하더라고요”

내가 재밌는 일화 하나 얘기해 드릴까? 2001년 9월11일이야. 미국에서 쌍둥이 빌딩 무너진 날. 그날 내가 수원 현대전에 마무리 나가서 (박)경완이 형한테 3점홈런 맞고 5실점했어요. 독방 쓸 땐데 술 생각나더라고. 그런데 딱 김성근 감독님께 전화가 왔어요. 방에 올라오라는 거야.

그때가 11시 넘었는데 올라가니까 테이블에 맥주가 차려져 있어요. 맥주 마시면서 TV 켜니까 테러 속보가 뜨죠. 처음엔 영화인줄 알았던 감독님께 설명을 드리니까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그럼 내일부터 메이저리그 야구는 못하냐?”고 하시더라니까요.

LG에 감독님 오신다고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죽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죠.(웃음) 제가 충암고 2학년 때 감독님이 인스트럭터 와서 두 달 가르쳤죠. 평소대로 50-60개 던지고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던져봐라’ 그래요. 그리고 그냥 가만히 서 있으세요. 결국 200개 던졌죠. 1주일에 6일 동안 쭉.

감독님 오시고 2001시즌 초반 9이닝 동안 볼넷이 하나도 없었어요. 자신감이 올라가고 선발로 쓰시더라고, 꿈만 같았죠. 그런데 처음 4경기 나가서 승리가 없었어요. 그리고 5월8일 어버이날, 수원 현대전에서 5.2이닝 던지고 승리투수가 됐어요. 그 다음엔 마무리를 시키시는 거라.

이것도 처음이었죠. 마무리 맡고 8경기에서 5승3세이브 했어요. 더 던지고 싶어지더라고.(그해 신윤호는 15승6패18세이브로 다승 승률 세이브 3관왕과 투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김 감독 아들인 김정준 과장이 제 고교 선배에요, 그래서 저도 감독님한테 ‘아버님’하고 부른 적도 있어요. 그럼 그냥 웃으시더라고. 감독님 화난 건 이제껏 딱 두 번 봤어요. 말씀 안 하시고 안 써 버리시는데 성내시는 건 포기 안 했다는 의미죠. 저뿐 아니라 조인성, (이)병규 형 다 혼나봤어요. 원래 A급 선수는 구단에서 관리하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잘하든 못하든 불성실하면 선수로 안 쳐요. 2군이라도 노력하는 선수를 쓰세요. 2001년 앞두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매달렸어요. 야구밖에 없었으니까.

혹사요? 그런 질문 참 많이 받았는데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감독님 만나기 전까지 저는 죽은 나무였어요. 그 나무를 물주고 가꾸고 살려놓으신 거예요. 그냥 끝나는 야구 인생이었는데 야구판에 제 이름을 남겼다면 감독님 덕분이죠.

올 6월1일 LG에서 웨이버 통보받고 집에 가자마자 전화 드렸어요. 놀라면서 ‘알았어. 기다려라’고 해요. 결국 테스트 받고 SK 갔지요. 그런데 팔이 아프더라고. 내측 인대가 끊어졌대요. 수술하면 회복까지 1년 걸리는데 어느 구단이 기다려주겠어요. 그러다 방출 통보 받았고. 감독님 찾아가 “죄송합니다. 폐만 끼치고 떠납니다”라고 인사드리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은퇴하고 형 도와서 사진 인화 사업하게 됐어요. 지금은 일 배우는 중이에요. 아 참, 감독님 기사 잘 써주세요.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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