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꿈꾸는 복싱 태극전사] 지옥서 건진 왕체력…‘주먹’이 근질

  • 입력 2008년 7월 21일 09시 19분


태백선수촌서 막바지 메달 담금질

태릉선수촌 최경택 체력담당 지도위원은 “남자대표선수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들은 단연 복싱에 몰려있다”면서 4월4일, 복싱, 레슬링, 핸드볼 등 각 종목 선수 30여명의 불암산 크로스컨트리 결과표를 내밀었다. 복싱대표팀은 1위부터 6위까지를 휩쓸었다. 7위는 2004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 정지현(25). 복싱대표팀 천인호(49) 감독은 “고달픈 훈련의 결과물”이라면서 “내가 봐도 눈물이 날정도”라고 했다. 대표팀 체력훈련의 절정은 태백고지대훈련. 대표팀은 4월과 7월, 2차례 태백선수촌을 찾았다.

○올림픽까지는 수도자

태국복싱대표팀이 베트남의 외진 시골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외신이 화제가 됐었다. 이미 스타가 된 메달유망주들이 유흥문화에 빠질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국복싱대표팀의 생활은 수도자 수준이다. 대표팀은 4월 태백훈련을 거쳐 5월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등 중앙아시아의 복싱강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스파링 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천인호 감독은 “전훈지가 그 나라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곳이었다”면서 “전화가 제대로 터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7월, 다시 태백으로 돌아왔지만 세상과의 격리는 마찬가지. “훈련하기 좋은 조건이겠다”고 하자 플라이급(51kg) 이옥성(27)이 “약 올리냐”며 되받아쳤다. 태백선수촌은 태백터미널에서도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선수들은 주말 종교 활동을 제외하고는 선수촌에만 머무른다. 라이트급(60kg) 백종섭(28)은 “폰카로 찍은 딸 민주의 사진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천인호 감독은 대표팀 코치들에게도 금주령을 내렸다. 이훈(40) 코치는 “체중 감량 때문에 마음껏 먹지도 못하는 선수들을 두고 어떻게 술을 입에 대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고지에 울리는 거친 숨소리

태백훈련은 오전6시 기상 후 트랙을 도는 것부터 시작한다. 해발1330m에서는 산소부족에 적응하기 위해 적혈구 생산이 증가한다. 산소 운반능력과 심폐기능이 향상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천인호 감독은 “2주 가량만 훈련하고 내려가도 크로스컨트리 기록이 달라진다”고 했다. 오전 웨이트트레이닝 후 오후에는 기술훈련이 이어진다.

이승배(37) 코치가 경쾌한 댄스음악을 틀었다. 보지 않아도 훈련강도를 알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복싱화가 바닥에 거칠게 미끄러지는 소리와 글러브가 코치들의 미트를 때리는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잠시 뒤 들려오는 허파의 파열음. 땀 냄새가 짙어질수록 음악소리는 더 커진다. 천인호 감독은 “조금이라도 피곤함을 잊어보기 위해 시끄러운 음악을 튼다”고 했다.

3분간 매스복싱(Method Boxing·힘이 실리지 않은 주먹을 교환하는 것. 스파링보다 강도가 약한 실전훈련) 후 1분 휴식. 라운드가 거듭되자 주저앉는 선수도 보인다. 이훈 코치가 “분위기 좀 살려보자”고 소리치자 웰터급(69kg) 김정주(27)가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친다. 복싱은 2분 4라운드로 펼쳐진다. 하지만 프로복싱과는 달리 주심이 ‘정지(Stop)’ 콜을 하면 시계가 멈춘다. 천 감독은 “훈련은 3분 1라운드로 해야 실전에서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땀방울이 대진 운을 낳는다

저녁식사 후에는 비디오분석이 이어진다. 밴텀급(54kg급) 한순철(25)은 “이미 주요 선수들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됐다”고 했다. 이미지트레이닝도 필수. 미들급(75kg) 조덕진(25)은 “나쁜 대진표를 뽑는 꿈을 가끔씩 꾸는 것을 보니 부담이 있기는 한 모양”이라면서 “하지만 꿈은 반대가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복싱은 시드배정 없이 추첨으로 대진표를 작성한다. 1984LA올림픽 웰터급 은메달리스트 안영수는 1회전에서 세계최강 마크 앤서니 브릴랜드(미국)와 맞붙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2회연속 부전승을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대진표를 재추첨했고, 결국 결승전까지 브릴랜드를 피할 수 있었다. 1996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승배 코치는 16강전에서 쿠바 선수와 만나 1라운드에서 다운을 뺏기는 등 크게 고전하기도 했다. 천인호 감독은 “운동을 열심히 한 경우에는 어떤 대진표도 자신 있게 마련”이라면서 “복싱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도 일정부분 사실이지만 대진운은 하늘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복싱대표팀은 베이징올림픽에서 5체급에 출전한다. 5명은 1976몬트리올 올림픽(5명) 이후가장 적은 숫자. 천 감독은 “올림픽예선전에서 부진해 그 간 설움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선수들 모두 한국 복싱사에 이름 석자를 남기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고 밝혔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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