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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8일 0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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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순철이 2008년 신생구단 우리 히어로즈의 수석코치로서 현장에 돌아왔다. 이순철의 강성 캐릭터를 고려할 때, 팀 문화가 생소한 구(舊)현대 선수들과 어떻게 융화할지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분기점에서 이순철은 선수를 바꾸는 대신 자기를 바꾸는 쪽을 택했다. 그의 변신은 “시대가 바뀌었다”란 한마디로 응축됐다. (이 코치는 인터뷰 중 주로 존칭을 썼으나 최대한 대화의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글을 옮겼다.)
-히어로즈, 왜 이렇게 잘 하는 거예요?
“역시 우승 경험을 갖춘 선수들이라 다르네. 개인 야구를 안 하고 알아서 팀플레이를 할 줄 아니까 코치가 할 일이 없어. 남들은 꼴찌 후보라고 했는데 우리 스태프는 그 정돈 아니라고 여겼어. 심적으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시범경기 꼴찌 했을 때에도 선수를 믿었지. 시범경기는 작전도 안 걸었어. 몸 만들고 감각 찾는데 역점을 뒀을 뿐이지.”
-이렇게 빨리 현장으로 컴백할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감독을 했기에 힘들 것이란 생각은 했어. 하지만 나이가 젊으니까 평코치도 하려는 각오였어. 감독하면서 코치가 어떻게 감독을 보좌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공부했고. 나이, 경험 다 다르지만 이광환 감독 잘 되도록 보필하는 것뿐이지.”
-해태 시절 군기반장 캐릭터가 여기서도 통하던가요?
“시대가 변했잖아. 이젠 질책이 아니라 칭찬이지. 젊을 때야 의욕에 넘쳐서 그랬지만 지금은 지도자부터 냉철하고 차분해야 되겠지. 권위의식이 아니라 코치로서 선수들과 어울리도록 노력해. 로이스터 롯데 감독도 그런 모습이잖아. 다그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바깥에서 보기에 수석코치는 운신이 참 쉽지 않아 보여요.
“감독과 선수의 조정자라고 봐. 2군에 보낼 때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란 감독 뜻을 전해야 하고. 선수는 1군에 있든 2군에 있든 불만이 있지. 그 간격을 메워주는 것이 일이지. 기술적 부분이야 담당 코치가 하겠지. 분위기 살리는데 애쓰고 있어.”
-이광환 감독과 인연이 각별합니다.
“2003년 LG 감독 하실 때 내가 코치였고, 이후 내가 감독되고, 이 감독이 2군 감독이 되셨지. 철학이 확고한 분이지. 나보고 ‘홍보코치’라 부르셨고. 야구 선배들이 현장에 오래 남는 것은 좋은 일이야. 후배들이 예우를 해줘야지. 야구 철학은 비슷해. 빠르고 스피디한 야구. 다만 (느린 선수들 일색이어서) 이 팀에선 못하고 있을 뿐이지.(웃음)”
-이 감독 리더십이 호방하다보니 이 코치가 관리할 영역이 넓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밑져야 본전’은 아니야. 우리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부상이 아니야. 심적 다운이야. 의기소침 안 되도록. 어제(11일) SK에 13회 연장 끝에 졌을 때도 ‘당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지만 되갚아주면 된다. 코치로서 위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어.”
-들으셨죠? 일각에서 히어로즈가 너무 잘 하면 안 된다는 소리.
“그렇다고 질 순 없잖아. 거품 빠지는 데엔 찬성하지만 선수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 우리 구단도 계속 이러진 않을 거야. 성적이 나면 보상을 해준다는 희망을 보고 있지. 다만 지금은 구단에서 여력이 안 되는 거고. 구단도 이해는 하고 있다고 봐.”
-박노준 단장하고 무슨 연이 있었길래 수석코치로 낙점 받으셨어요?
“생각도 못했어. 박 단장에게 연락이 와서 ‘해 주십시오’ 하는 거야. 돈은 물어보지도 않았어. 오고 나서야 (연봉) 통보를 받았지. 그래도 선수들이랑 부대끼면서 사니까 좋아. 박 단장과는 아마 시절, 해태 시절 잠깐 같이 뛴 게 전부야. 작년에 해설 같이 하면서 모임도 가졌는데 좋게 봤나봐.”
-현장 스태프로서 박 단장이 추구하는 메이저리그식 운영을 간섭이라 여기지 않으세요?
“구단과 현장이 구분되는 시스템이 나는 바람직하다고 봐. 단장이 팀의 골격을 만들고, 그 전력으로 감독이 운영하고. 다만 경기 내용까지 간섭하면 곤란하겠지만. 이렇게 되려면 단장도 야구를 아는 사람이 해야겠지.”
목동=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사진=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