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고단한 투어 생활 속에서도 그는 ‘항상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세계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14일에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소니오픈에서 통산 7승을 거뒀다. 마침 현지 시간 1월 13일은 105년 전인 1903년 한국인이 처음으로 미국 이민 길에 올라 호놀룰루에 첫발을 내디딘 날.
이를 기념해 미국 연방의회는 3년 전 ‘미주 한인의 날’을 제정해 선포했다.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섬 소년’에서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최경주.
뜻 깊은 날을 맞아 우승이라는 큰 선물을 교민들에게 안겨 준 그가 더욱 자랑스럽다.》
사흘간 15언더파를 쏘아대며 돌진하던 ‘한국형 탱크’는 잠시 주춤했다.
하와이 특유의 돌풍이 불어 샷은 번번이 조준한 방향과 어긋났지만 탱크는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탱크’ 최경주(38·나이키골프)가 올 시즌 두 번째 대회에서 한층 향상된 코스 매니지먼트를 선보이며 일찌감치 시즌 첫 우승컵을 안았다.
최경주는 14일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와이알레이CC(파70)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소니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1개와 보기 2개로 1오버파 71타를 쳐 최종 합계 14언더파 266타로 정상에 올랐다. PGA 통산 7승째.
4번홀(파3)에서 첫 보기를 기록한 최경주는 13번홀(파4)에서도 파 퍼트를 놓쳤다. 최경주가 2타를 잃는 동안 ‘떠버리’ 로리 사바티니(남아프리카공화국)가 추격을 시작했다. 전날까지 6타 차였지만 어느 새 2타 차로 좁혀진 것.
사바티니는 18번홀(파5)에서 이글 퍼트를 놓친 뒤 결국 파로 마무리했고 최경주는 같은 홀에서 이날 유일한 버디를 뽑아 내며 우승을 자축했다.
최경주는 “바람이 불어 아주 힘든 경기였지만 인내심이 우승컵을 가져다줬다”며 소감을 밝혔다.
시즌 개막전인 메르세데스벤츠 챔피언십에서 공동 28위에 그쳤던 최경주는 소니오픈 우승으로 포인트 4500을 얻어 합계 4681포인트로 페덱스컵(플레이오프) 포인트 1위에 올랐다.
우승 상금 95만4000달러를 얻은 최경주는 자신의 역대 최단 기간인 2개 대회 출전 만에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102만1500달러)하며 다니엘 쇼프라(112만8090달러)에 이어 상금 랭킹 2위에 올랐다.
나상욱(24·코브라골프)은 초반에만 3타를 잃었지만 최종 18번홀에서 이글을 기록한 데 힘입어 공동 4위(8언더파 272타)를 차지하면서 15개 대회 만에 톱10을 기록했다. 올 시즌 PGA 무대에 정식 데뷔한 양용은(36·테일러메이드)은 공동 20위(4언더파 276타)로 무난하게 데뷔전을 치렀다.
○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유족에 3억 원 기부
한편 최경주는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며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 사고 유족들에게 ‘최경주재단’을 통해 3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준비된 우승… 마스터스가 목표”▼
1903년 1월 13일 최초의 한국인 이민선 ‘갤릭호’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102명의 한국인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
그로부터 105년이 흘러 한국인 미국 이민의 효시가 된 바로 그날(1월 13일·현지 시간) 바로 그 땅에서 최경주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정상에 올랐다. 한인 이민 105주년 기념일에 우승한 것이다.
대회 직후 한인회 초청을 받은 최경주는 “뜨거운 응원을 해 준 교민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미국 진출 이후 골프백에 태극기를 붙이고 다니며 만리타향에서 고생하는 교민들에게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 최경주가 더욱더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바람이 많이 불어 샷이 엉망이었다. 벙커 아니면 러프였다. 그런데도 파 세이브가 많아 우승할 수 있었다. 마지막 홀을 버디로 끝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비시즌에 착실하게 준비한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밝힌 최경주는 “지난 시즌 성적이 좋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클럽 테스트에 정성을 쏟았으며 새 드라이버가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분석했다.
13번홀에서 이번 대회 첫 3퍼트로 보기를 한 데 대해 그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마치 각성제라도 먹은 것 같았다. 여기서 버텨야 한다. 포기하자 말자고 다짐했다”고 위기의 순간을 털어놓았다.
한 주를 쉬고 다음 주 타이거 우즈가 시즌 첫 출전을 하는 뷰익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는 최경주는 “올해 역시 마스터스 우승이 목표다. 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4시즌 연속 우승’ 현역선수 4명뿐… PGA 엘리트 그룹 진입▼
지난해 말 사석에서 만난 최경주는 “2008시즌에는 초반에 하와이에서부터 일을 내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12월 주최하는 타깃월드챌린지 초청도 거절했다. “내가 타이거 우즈의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 KJ가 이제 많이 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겐 다음 시즌 준비가 더 중요하다.”
그랬던 최경주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착실한 비시즌 훈련을 마친 그가 시즌 두 번째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려 올 시즌 전망을 한층 밝게 했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현역 선수 가운데 4명밖에 없는 ‘4시즌 이상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우즈(12시즌 연속)와 비제이 싱(6시즌 연속)에 이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우승한 필 미켈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진정한 ‘엘리트그룹’에 진입한 것.
최경주의 1월 우승은 이번이 처음. 지난해까지 거둔 통산 6승은 모두 5월 이후에 나왔다. ‘슬로 스타터’의 면모에서 벗어나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웠기에 올 시즌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대회 기간 내내 안정된 기량을 앞세워 1∼4라운드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통산 두 번째로 차지한 것도 돋보였다. 이런 독주로 소니오픈 41년 사상 처음으로 최종일에 오버파를 치고도 챔피언이 되는 진기록도 남겼다.
새로 바꾼 나이키 신형 사각 드라이버의 평균 비거리는 306.9야드(9위)에 이르렀고 그린 적중률은 75%(4위)로 정교했다. 약점이던 퍼트도 라운드당 평균 28.3개(21위)로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하와이의 일간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는 전남 완도 출신 최경주를 청해진을 배경으로 이름을 떨친 ‘해상왕’ 장보고에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