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23일 24일째 남위 84도를 넘다!

  • 입력 2003년 12월 2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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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일까?’ 바람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스키고글에 안면보호 마스크까지 쓰고 운행하던 대원들이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강철원, 이현조, 오희준, 박영석 탐험대장
‘누가 누구일까?’ 바람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스키고글에 안면보호 마스크까지 쓰고 운행하던 대원들이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강철원, 이현조, 오희준, 박영석 탐험대장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14.2도

풍속 : 초속 8.2m

운행시간 : 07:50 - 19:00 (11시간10 분)

운행거리 : 32.8km (누계 :491.4km) /남극까지 남은 거리: 643.2km

야영위치 : 남위 84도 14분464초 / 서경 80도 29분 546초

고도 : 1,342m / 85도까지 남은 거리: 84.7km

▼남위 84도를 넘다!▼

오늘의 운행거리 32.8km. 이틀 동안 21.3km를 걷고 사흘 동안 102.8km를 걸었다. 남극에서 운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화이트 아웃과 블리자드이다. 이틀 동안 계속된 화이트 아웃과 블리자드 속에서 운행한 거리가 좋은 날 하루거리도 못된다. 오늘부터 운행시간을 변경했다. 그저께까지 4시 기상, 7시전 출발이었는데 오늘부터는 5시 반에 기상하여 준비 되는대로 출발이다. 운행을 마칠 무렵의 날씨가 운행 중의 날씨보다 좋다는 판단에 의한 박대장의 결정이다. 7시 50분, 출발준비가 완료되자 "자, 가자!"는 박대장의 외침과 함께 대원들이 속속 뒤를 따른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설원의 상태가 좋지 않다. 겉보기에는 크러스트가 되어 단단한 듯 보이나 밟으면 밟은 자리만 폭삭 주저앉고 만다. 짜증나는 설사면의 연속.

출발 전의 기온이 14.2도 였고 바람은 초속 6.7m로 불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초속 7.5m, 8.2m로 강해지고 기온이 자꾸 내려간다. 기온의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신체부위는 손이다.

쉴 때마다 얇은 장갑만으로 간식을 먹고 볼일을 보고 벨트를 풀었다 메었다 하기 때문에 손은 다른 부위보다 차가운 바람에 자주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수분 안에 얼어붙는 손을 녹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벙어리장갑에 넣고 걷는 일 밖에 없다. 걸으면 몸에서 열이 나고 30분 정도가 지나면 그 열기가 손끝까지 전해진다. 그 전까지는 스틱의 고리를 손목에 끼운 채 그냥 걷다가 손이 따뜻해지면 스틱을 움켜쥐고 본격적인 스틱 떵으로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오전 9시 25분 경, 84도를 넘어섰다. 11시 20분의 첫 휴식시간에 박대장이 GPS를 꺼내들며 "84도 넘었다"고 외치며 퉁퉁 부은 입술을 오물거리듯 웃는다.

하루 종일 비슷한 상태의 설원을 걷는다. 오후 들면서 바람이 약간 줄더니 그나마 추위가 덜 느껴진다. 탐험 24일째를 맞으며 몸 스스로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함을 느낄 수 있다. 출발 시간을 늦춘 것이 맞아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오늘 날씨가 그런 것인지 운행을 마칠 무렵에 추이가 덜해 어제처럼 텐트 치는데 고생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운행 종료 후 텐트 안에 대원들이 모여 앉아 84도 넘으면 하기로 했던 식량에 관한 회의를 한다. 86도와 88도를 넘을 때도 식량에 관한 회의를 하기로 결정하고 오늘은 남은 식량의 종류(주식과 간식)별 총 수량을 파악하고 남극점 까지 남은 거리와 탐험대의 운행속도 등을 고려하여 식량이 남는지 모자라는지를 파악한다. 현재 주식은 예비 이틀 분을 포함하여 거의 맞게 남은 상태. 간식은 예비를 빼고도 조금 남는다. 그래서 오늘 저녁 만큼은 남는 간식을 먹다가 배가 터져도 좋으니 마음껏 먹기로 했다. 남는 것은 내일 운행 전에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을 양껏 챙긴 후, 그래도 남는 것은 주머니에 담아 눈 위에 놔두고 가자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남는 것은 누군가가 필요로 할지 모른다' 는 데서 내린 결론이다.

오희준 대원은 탐험대의 살림꾼답게 간식을 풀어 놓고 대원들이 즐겨 먹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나눠 담는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각자의 기호대로 맛난 간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쵸코바로 핫쵸코 음료를 만드는 이현조 대원의 손길이 분주하다. 뜨거운 걸 원하면 뜨겁게 만들어 주고, 차가운 걸 원하면 무공해의 눈을 퍼다가 차갑게 만들어 준다.

요 며칠 게시판의 글이 너무 조금 올라와서 불만이었던 대원들이 갑자기 부쩍 늘어난 격려의 글을 읽느라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한국에 계신 모든 분들께 즐거운 성탄절 맞으시길, 좋지 않은 경제여건 속에서도 훈훈한 세밑 되시길 남극탐험대 대원 모두가 순백의 설원에서 간절히 기원합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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