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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1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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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斷腸)의 심정으로 불러봅니다. 조선반도를 휘저은 철마였고 세계를 주름잡은 영웅. 당신이 이렇게 덧없이 가시다니요.
올해 초 많이 편찮다는 얘기를 듣고 지인들과 문병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가족들의 만류로 그만두어야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항상 의연하고 늠름했던 형의 모습이 새삼스럽습니다.
제가 형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이 언제인 줄 아십니까. 뜨거운 피가 끓고 혈기왕성하던 열여덟살 때였지요. 당시 제일고보에 다니던 저에게 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제패 소식은 기쁨과 착잡함을 동시에 안겨줬습니다.
일제의 폭압적 식민통치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시기에 식민지 국민으로 올림픽 마라톤을 석권했다는 소식은 희망을 넘어 우리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하늘의 계시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약소민족이 아니라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강인한 정신과 육체를 지닌 민족임을 가슴속에 새기고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하지만 형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는 소식에 이어 동아일보가 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뒤 겪는 고초를 보고 식민지 백성의 설움에 한참 동안 목이 메었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내 가슴속의 영웅, 손기정형과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마 제가 대한체육회장으로 있을 때인 1966년일 겁니다. 당시 태릉선수촌을 만들어놓고 ‘대한민국의 마라톤을 다시 부흥시키자’고 제의했을 때 형의 그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형은 그때 태릉선수촌에서 첫 번째로 합숙훈련을 하게 된 마라톤팀을 이끌고 ‘조선 마라톤의 기개를 다시 한번 세계 만방에 드높이자’며 후배들과 밤낮으로 훈련에 정진하셨지요.
황영조의 바르셀로나올림픽 제패나 이봉주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형이 눈을 부릅뜨고 후배들을 이끈 덕이 아니겠습니까. 이 얼마나 보람찬 결실이요, 성취입니까.
형과의 인연중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66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던 날 당시 단장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던 형이 일본에 우승을 뺏겼다는 자책으로 삭발을 한 채 공항에 나타나신 겁니다. 올림픽영웅다운 일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시다니요.
체육인으로,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한 사람이 그까짓 병마를 이기지 못하신 것이 그렇게 유감일 수 없습니다.
형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체육은 노력한 만큼 그대로 거둬들인다고. 그리고 집념이 있어야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다고. 당신의 그 거룩하신 뜻과 정신을 과연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그 말씀과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선연한데….
비록 형은 가셨지만 아주 간 것이 아닙니다. 형의 육신은 만물의 섭리대로 원래 난 곳으로 돌아갔지만 형의 말씀과 정신은 고스란히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손기정형!
형이 그토록 염원했던 마라톤의 세계 제패는 후학들이 이뤘고 앞으로도 그들의 몫입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품고 사셨던 당신의 회한도 이미 후학들이 이뤄냈습니다.
형의 불굴의 의지와 탁월한 성취는 모두 이 땅 젊은이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쉴 겁니다.
불초 이 사람도 이제 아흔 고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형과 재회의 날도 머지 않아 보입니다. 고통을 함께 하지 못하고 붙들지 못한 우리 죄를 용서하기 바랍니다. 부디 편안하고 자유로운 세계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민관식·대한체육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