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만 푹푹 내쉬는 코끼리 감독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옷 차림도 먼 길을 떠날 모습이어서 필자는 다시 한번 놀랐다. 테스트에 응한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고 곧이어 있을 공개지명에 참가해야 할 그가 아닌가.
필자가 “이른 새벽부터 어딜 가십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야지”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내참 큰일났군, 큰일났어”를 연발했다.
필자는 직감적으로 ‘아, 이종범을 일본에 보내기로 결정했구나’라고 느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김감독의 표정이 선동렬을 일본으로 보낸 직후인 96년 봄 하와이 전지훈련때보다 훨씬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김감독의 탄식처럼 해태는 시즌초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연 해태는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언제나 팀전력 이상의 성적을 낸 해태다. 장기로 치면 차포를 뗀 김감독의 올시즌 성적표를 지켜보는 것도 또다른 흥미거리가 될 것이다.
허구연〈야구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