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괴물폭우 덮친 가평, 사방댐 있는곳 피해 적었다
피해 상위 10개 마을 사방댐 8개뿐
하위 10개 마을엔 3배 넘는 26개
오늘까지 ‘최대 200mm’ 물폭탄 예보
“돌이라도 먼저 치워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대로예요.”
경기 가평군 조종면 신상리에 사는 박일천(76) 윤금숙 씨(72) 부부는 지난달 20일 집 옆으로 난 세곡천을 가리키며 가슴을 쳤다. 물길은 큰 돌 수십 개로 막혀 있었다. 1년 전 ‘괴물 폭우’ 당시 세곡천 상류에 사방(砂防)댐이 없는 탓에 그대로 쓸려 내려와 방치된 돌들이다.
이처럼 사방댐의 유무가 지난해 7월 폭우로 7명이 숨진 가평군 마을의 피해를 가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달 초 장마가 시작된 시점까지도 사방댐 추가 설치와 하천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주민들은 또다시 폭우가 마을을 삼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8일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가평군 사유 시설 피해 5374건(총피해액 123억 원)을 사방댐 설치 현황과 대조한 결과, 피해가 컸던 상위 10개 마을에는 사방댐이 8개뿐이었다. 피해가 가장 적었던 10개 마을 전체의 사방댐 숫자(26개)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사방댐은 집중호우 때 유속을 늦추고 바위나 나무는 계곡 안에 가둬 물만 흘려보내는 ‘1차 방어선’이다. 가평군은 지난해 참사 이후 사방댐 12개를 신설했지만, 피해 상위 10곳 중 7곳은 여전히 신설 계획이 없다. 또 피해가 컸던 세곡천, 마일천 등 하천 6곳에서 폭을 넓히고 제방을 높이는 복구 사업은 6일에야 시작했다.
한편 기상청은 9일까지 중부와 전북 지역에 많게는 200mm 이상의 비가 온다고 예보했다. 산림청도 이날 강원 등 6개 시도의 산사태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했다.
8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의 한 계곡 사방댐 하류에 퍼내다 만 흙과 돌이 쌓여 있다. 사방댐은 쌓인 흙을 제때 치우면 산사태 예방에 큰 역할을 하지만 가평에선 설치와 관리가 모두 미비해 지난해 폭우 때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평=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비가 내리던 지난달 25일 오후 경기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 지난해 7월 폭우로 가평에서 가장 큰 피해(19억6606만 원)를 본 이 마을에서 당시 유일하게 설치돼 있던 사방댐의 하류 쪽엔 퍼내다 만 흙더미가 산비탈에 쌓여 있었다. 하천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서 캠핑장을 운영하는 김종철 씨(67)는 “지난해 수해 전까지 쌓인 흙을 퍼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사방댐이 돌로 막힌 탓에 물길이 옆으로 터지면서 마을이 열흘 넘게 고립됐다”고 했다. 지난해 7월 20일 마일리에선 토사가 캠핑장을 덮쳐 일가족 3명이 숨졌다.
● 민원 들어와야 짓고, 참사 나고서야 퍼냈다
사방댐은 산사태 때 돌과 흙이 계곡을 따라 한꺼번에 쓸려 내려오는 것을 막는 방재 시설이다. 주기적으로 준설(모래와 나무 등을 치우는 작업)해 잘 관리할 경우, 통상 하나의 사방댐이 5t 트럭 수십 대 분량의 토석류를 한꺼번에 막아준다. 계곡 경사면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하고 유속을 늦추는 덕분에 하류 마을에 대피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가평군 49개 마을 가운데 지난해 폭우로 가장 피해가 컸던 10곳엔 사방댐이 8개뿐이었다. 율길·현·원흥·승안·신하리 등 5곳엔 지난해 사방댐이 하나도 없었다. 올해 들어 마일·원흥·율길·백둔리에 사방댐 총 12개를 신설했지만 지난여름 피해 규모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나마 설치된 사방댐도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돼 있었다. 신상리 사방댐 인근에서 20여 년째 거주 중인 임영식 씨(75)는 지난해 폭우 때 뒷산에서 쏟아진 비와 토사가 마당으로 쏟아지면서 사흘간 꼼짝없이 갇힌 채 공포에 떨었다. 임 씨는 “물 빠지는 구멍이 너무 작아 큰 돌 하나가 막으면 물이 폭포처럼 넘친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신상리 사방댐 주변에는 여전히 큰 돌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가평군은 지난달 30일 기준 수해 복구율이 97%라고 밝혔지만, 정작 피해가 컸던 마을을 관통하는 하천의 복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세곡천(신상리)과 마일천(신하리) 등 핵심 하천 6곳의 개선 복구 공사는 6일에야 착공했다.
가평군 산림과 관계자는“2023, 2024년엔 사방댐 준설 실적이 없었는데 솔직히 신경을 못 쓴 부분이 있었다”며 “지난해 9곳, 올해 39곳의 준설에 착수했다”고 했다. 피해가 컸던 지역에 사방댐이 부족했던 이유에 대해선 “산사태 취약 지역 등에서 타당성 검토를 거쳐 설치를 결정하고, 그 외 지역은 민원이 들어오는 곳을 먼저 검토한다”고 했다. 하천 복구가 더딘 데에는 “설계에만 6, 7개월이 걸리는 대공사라서 심의 등 절차가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 ‘준설 필요’ 결론 내고도 방치한 산청
지난해 ‘괴물 폭우’로 14명이 숨진 경남 산청군은 사방댐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도 큰 피해를 입었다. 준설이 문제였다. 사방댐을 설치만 해 두고 주변 흙 등을 퍼내지 않은 것.
경남도는 지난해 4월 산청 지역 17곳에 사방댐에 준설이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고도 예산 부족으로 손대지 못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폭우가 덮쳤고, 하천이 토사 등으로 가득 차 있던 사방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산청군은 참사가 난 이후에야 17곳 중 11곳의 준설을 마쳤다. 지은 지 20년 넘은 노후 사방댐의 정밀 점검도 지난해 말에야 끝냈다.
복구 현장은 1년이 지나도록 공사 중이었다. 4일 산청읍 모고리 마을회관에서 200m 떨어진 소하천 일대엔 흙과 석재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당초 지난달 말 준공 예정이던 이 공사는 설계 변경으로 미뤄졌다. 주민 임삼섭 씨(70)는 “이미 장마철인데 공사가 끝나지 않아 애가 탄다”고 토로했다. 산청읍 부리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정기호 씨(61)는 “비가 오는 날이면 산사태 위험이 없는 곳으로 운전해 차 안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하천 복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3일 기준 산청에서 아직 완료하지 못한 재해 복구 사업은 87건으로, 대다수는 하천 복구 등 핵심 사업이다. 계곡 바닥을 보강해 토사 유출을 막는 ‘계류 보전’과 산비탈이 쓸려가지 않게 지면을 고정하는 ‘산지 사방’ 공사도 완료되지 않았다. 산청군 측은 “대규모 사업이라서 예산 편성부터 심의 등 행정 절차가 길게 소요됐고, 장비와 자재 수급뿐 아니라 땅 주인의 동의를 받는 것도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 설치 기준도, 준설 규정도 없어
현행법엔 각 하천에 사방댐을 몇 개 설치해야 한다는 기준도, 언제 준설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어느 마을에 방어선을 세울지, 쌓인 흙을 언제 퍼낼지 등이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사정과 판단에 맡겨진 셈이다. 관리 주체 간 원칙도 엇갈린다. 가평군이 “장마철 대비 준설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반면 산림청은 “‘사방시설의 유지관리 지침’에 따라 추가 설치가 원칙이고 준설은 인접 생활권일 때 검토하여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김정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은 “정비되지 않은 사방댐과 하천은 오히려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도 “퇴적량이 설계 용량의 일정 비율을 넘으면 준설을 의무화하고 별도 예산을 편성하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며 “육안 조사에 의존하는 안전 점검도 스마트 계측 등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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