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입대한 김순식 육군 하사, 정전협정 8일 앞두고 철원서 전사
2024년 유해발굴감식단이 찾아내
귀환 못한 국군 전사자 12만여 명
“보훈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 ‘메모리얼 페스타’ 등 호국문화 확산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값진 희생과 헌신,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올해는 6·25전쟁 76주년이 되는 해로 이번 꿈새김판에서는 ‘감사의 빛 23’을 통해 6·25전쟁 참전용사의 값진 희생과 헌신으로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고, 대한민국의 빛나는 오늘이 이뤄졌음을 표현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지난달 12일 경기 가평군의 한 펜션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에서 김의영 씨(72)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손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전달한 아버지의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가 들려 있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산화한 지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귀환한 부친은 김순식 육군 하사(당시 20세). 정전협정 체결을 불과 8일 앞둔 1953년 7월 19일 전사한 대한민국의 젊은 군인이었다.》
73년 만에 귀환한 국군 용사
김 하사는 경기 가평군 출신으로 1952년 10월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그의 아내는 아들을 임신 중이었지만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가족보다 조국을 먼저 선택한 것. 이후 육군 제6사단 7연대에 배치된 그는 중부전선의 격전지였던 금성지구전투(1953년 6∼7월)에 투입됐다. 금성지구전투는 휴전을 앞두고 중공군이 마지막 대규모 공세를 감행한 전투였다. 국군 제2군단 예하 6개 사단은 중공군 5개 군단 예하 15개 사단의 공격을 막아내며 전선을 사수했다. 군 기록에 따르면 김 하사는 적 포탄 공격으로 온몸에 파편상을 입고 전사했다. 그의 공훈을 기려 정부는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영웅의 이름은 오랜 세월 가족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아내는 평생 남편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조차 못 본 채 칠순이 넘도록 그리움을 삭여야 했다.
기적 같은 만남은 올해 초에 찾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024년 10월 강원 철원군 원동면 세현리 일대에서 발굴한 김 하사의 유해를 아들 김 씨의 유전자(DNA) 시료와 정밀 분석한 결과 올해 2월 부자(父子) 관계를 최종 확인한 것이다. 오랜 세월 전장에 묻혀 있던 젊은 병사는 비로소 이름을 되찾고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 씨는 “죽기 전 부친의 유해라도 한 번 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국립묘지에 정중히 안장해 평안히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한 가족의 한(恨)이 풀리는 순간이자 국가가 끝내 지켜낸 약속의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귀환하지 못한 국군 전사자가 12만여 명에 이른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웅들을 마지막 한 분까지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했다.
“보훈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
대한민국은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이달 5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한미 6·25 전사자 유해 상호 봉환식은 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날 하와이에 안치돼 있던 국군 전사자 유해 10구가 고국으로 돌아왔고, 정부는 미군 유해 3구를 미국 측에 인도했다. 특히 그동안 하와이에서 진행되던 유해 상호 봉환식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유해 인도 절차를 넘어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희생을 예우하는 한미동맹의 정신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오늘의 봉환은 참전용사들의 피와 헌신 위에 세워진 한미동맹을 더욱 깊고 굳건하게 만드는 뜻깊은 이정표”라며 “자국의 용사뿐 아니라 동맹국의 용사까지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노력은 피로 맺어진 동맹의 가장 뜨거운 증거”라고 강조했다.
국가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고, 나라와 국민을 지키다 희생한 영웅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보훈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호국보훈은 국가의 정체성이자 국가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의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은 우리 해군 장병들이 북한의 기습 도발에 맞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제1·2연평해전이 있었던 달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위협에 맞서 땅과 바다, 하늘에서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장병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응원하는 것은 호국보훈의 출발점일 것이다.
호국보훈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지는 약속이기도 하다. 단 한 명의 영웅도 잊지 않는 나라, 희생에 반드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호국보훈의 가치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국가의 품격이다.
아울러 그들의 헌신이 영원히 기억되고 국민의 가슴속에서 항상 살아 숨 쉬도록 일상 속의 보훈 문화를 증진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이달 초 국가보훈부가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 젊음의 광장 일대에서 개최한 ‘2026 코리아 메모리얼 페스타’가 대표적 사례다.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공헌에 추모와 감사를 전하는 공연과 함께 6·25 참전국들의 음식들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행사로 큰 호응을 얻었다.
보훈이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가치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통해 누구나 자연스럽게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문화로 다가올 수 있는 계기를 더 많이 만들어 나갈 방침이라고 보훈부는 강조했다.
방산업체도 보훈 가치 실현에 힘을 보태고 있다. LIG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는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피크닉장에서 열린 ‘거북이 마라톤 대회’ 현장에서 국가보훈부에 기부금 1억 원을 전달했다. 기부금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의료지원 및 주거 환경 개선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15일 경남 사천 본사 개발센터에서 6·25전쟁 참전용사 후손 34명에게 70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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