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소나무 조림… 자생력 외면하는 환경영향평가 현주소

  • 동아경제
  • 입력 2026년 5월 22일 17시 59분


전남 장성군 삼나무, 편백 조림지. 동아일보 DB
전남 장성군 삼나무, 편백 조림지. 동아일보 DB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훼손 문제가 심화되면서 국내 환경영향평가 제도 역시 생태계 기능과 회복력, 생태계서비스 가치까지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생태계조사평가협회(KASAE, 회장 박정호) 주관 특별세션이 마련됐다.

이날 특별세션에서는 ‘자연환경보전 정책의 밸류업 전략’을 주제로,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 등 급변하는 환경 여건에 대응하기 위한 자연환경 진단·평가 체계의 구조적 개편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특히 기존 개발사업 중심의 환경영향평가 체계를 넘어, 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책·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번 세션에서는 이현우 한국환경연구원 박사의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고려한 조사·평가체계 개선방안’ 발표와 이규송 강원대 교수의 ‘기후위기 시대 자연환경 진단·평가의 재정립’ 발표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현행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개발사업 인허가 절차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생태계 기능 진단 역할까지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사업 추진 전 개발 예정지의 동식물상과 대기·수질·소음 등을 검토하는 구조다. 환경영향평가법상 사업 규모에 따라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며 수행기관은 제1종·제2종 환경영향평가업으로 구분된다.

제1종 환경영향평가업은 종합적인 평가 수행이 가능한 업체를 의미하고, 제2종 환경영향평가업은 특정 분야 중심의 평가를 담당한다. 자연생태 조사와 분석 업무는 상당 부분 제2종 업체들이 수행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행 체계가 여전히 법정보호종 출현 여부와 서식 종 목록 확인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생태계 기능 변화와 회복력, 생태계서비스 가치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우 한국환경연구원 박사는 발표에서 “기후위기 시대 자연환경 평가는 단순 보전 차원을 넘어 생물다양성의 경제·사회적 가치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 환경영향평가가 사업 인허가 과정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개발사업 전·중·후 자연환경 변화에 대한 장기 추적과 정량평가 기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현재는 보호종 발견 여부가 사업 추진 과정의 핵심 변수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생태계 연결성이나 탄소흡수 기능 변화, 자연 회복력 등은 체계적으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계서비스 가치 평가 ▲생물다양성 변화 모니터링 ▲회복탄력성 기반 평가체계 ▲AI·드론·eDNA 기반 상시 조사 시스템 구축 등을 제안했다.

현장에서는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부실조사 논란 역시 언급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를 특정 업역 문제로 단순화하기보다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 토론 참석자는 “거짓·부실 문제는 일부 생태계 조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으며, 업계에서는 저가 재대행 구조와 조사기간 부족, 계절별 조사 한계, 발주 구조 왜곡 등 구조적 개선 필요성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산불 복원 정책 논란과도 연결된다. 이규송 강원대 교수는 발표에서 1996년 고성 산불, 2000년 동해안 산불, 2022년 울진 산불, 2025년 의성 산불 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에 따르면 혼합림·활엽수림 지역은 산불 이후 자연 회복력이 높았고, 자연적인 식생 회복만으로도 산불 발생 4개월 뒤 토양 침식 위험이 약 3.57배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과거 복구 정책은 자연복원이 가능한 지역에서도 획일적인 소나무 조림을 반복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교수는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약 80% 지역이 자연복원 가능 지역으로 판별됐음에도 대부분 지역에서 소나무 조림이 강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분별한 긴급벌채와 인공조림은 오히려 숲의 자연 회복을 지연시키고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단순림 구조를 반복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가 단순 보전 중심 환경평가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보호종 존재 여부뿐 아니라 산림 생태계의 장기적 회복력과 탄소흡수 기능, 생태계서비스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이날 세션에서는 ▲국토 자연환경 건강성 정기 평가 ▲개발사업 전·중·후 변화평가 ▲산불·홍수·훼손지 복원 성과평가 ▲생물다양성·생태계서비스·회복탄력성 정량평가 체계 구축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자연생태 조사 체계를 독립적 전문 영역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현재 환경영향평가 체계 내부의 일부 분야처럼 운영되는 자연생태 조사를 향후 자연환경보전법 기반의 독립적 전문 평가·진단 체계로 발전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상 ‘제2종 환경영향평가업’ 체계 대신 자연환경보전법 기반의 ‘자연환경평가업(가칭)’ 등 법적 정합성을 갖춘 독립 업역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자연생태 조사·진단·복원·사후관리 기능을 별도 전문 체계로 정립해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향후 논의 중인 공탁제도 역시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교육환경평가나 기후변화영향평가처럼 자연환경 분야 역시 독립적 전문 평가체계로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현장에서는 규제 확대와 사업 지연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영한 강원연구원 팀장은 “생물다양성 가치를 고려한 조사·평가 체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실 적용성과 사업 규모별 차등 적용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LH 역시 자연환경 평가 전문성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전면적인 공탁제 도입이나 과도한 절차 확대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ESG와 TNFD(자연관련 재무정보공개) 흐름 확산으로 자연자본 관리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자연환경 진단 체계 개편 논의 역시 앞으로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남궁형 한국생태연구소 대표는 “교육환경평가나 기후변화영향평가 역시 과거에는 환경영향평가 내부 항목이었지만 현재는 별도 제도로 자리 잡았다”며 “자연환경 분야 역시 독립적인 평가 체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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