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막은 아파트 불법주차, 쪽문으로 대원 진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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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사상 경기 광주 아파트 화재
78가구 미니단지 진입에 7분
6년간 차량 강제처분 사례 4건뿐
“사후 처리 행정 부담 덜어줘야”

23일 오전 3시 13분경 화재가 발생한 경기 광주시 도척면의 한 아파트 주차장. 출입로에 차량이 주차돼 있어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모습이다. 폐쇄회로(CC)TV 화면 캡처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한참을 못 들어가더라고요.”

24일 오전 10시경 경기 광주시 도척면의 한 아파트 단지.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목격자는 주차구역 밖에 세워진 차량 다섯 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아파트 차원에서 단속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주민들 항의로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전날 새벽 이 아파트 9층에서 불이 나 일가족의 가장이 숨지고 두 자녀가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이 난 곳은 전체 380여 가구 중 78가구가 거주하는 동이었다. 하지만 불법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소방차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하는 데 5분 넘게 걸렸다. 대규모 화재가 발생한 현장에서 소방차 진입이 지연될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진입로 막혀 쪽문으로 돌아간 대원들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23일 오전 2시 56분경 13층짜리 아파트 9층에서 불이 났다는 맞은편 아파트 주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1시간 20여 분 만인 오전 4시 19분경 불길을 완전히 잡았다. 이 불로 집 안에 거주하던 이모 씨(45)와 아들(10), 딸(7)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이 씨는 끝내 숨졌다. 두 자녀 역시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가 확보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6분경 소방차가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오르막길을 따라 승용차와 트럭 등 차량 6대가 주차돼 있어 소방차가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 끝에 약 7분 뒤 소방차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섰지만 이번에도 주차구역 밖에 세워진 차량 때문에 소방차는 사고가 난 건물 공동현관 앞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뒤늦게 차량 주인이 차를 옮겼지만 이미 소방대원들은 아파트 쪽문 계단을 통해 현장으로 진입한 뒤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소방 관계자는 “차량 진입은 지연됐지만 다행히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로가 가까워 빠르게 달려가 초동조치를 할 수 있었다”면서도 “아파트 내부 소화전이 노후해 고장나 있는 경우도 많아 소방차가 반드시 아파트 공동현관 앞까지 진입해야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막으면 부순다”…실제론 6년간 4건 불과

사고 다음 날 다시 찾은 현장에는 여전히 차량 5대가 오르막길 노면에 표시된 ‘소방차전용’ 구역을 차지한 채 주차돼 있었다. 아파트 주민 김모 씨(68)는 “늦게 퇴근하면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주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이처럼 소방차의 화재 현장 진입을 막는 차량을 부수는 등 강제처분할 수 있도록 소방기본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올 1월 공개된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6월 개정안이 시행된 이래 약 6년간 실제 주차된 차량을 강제처분한 사례는 4건에 불과했다. 강제처분 훈련은 2022년 약 4000회, 지난해 약 5300회 실시했지만 현장에선 사실상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현장에선 강제처분이 어려운 이유로 사후 처리 과정의 행정적 부담을 꼽고 있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강제처분이 면책되려면 소방 당국이 ‘긴급한 상황’이었다고 입증해야 해 이 과정에서 소방관 개인이 시달릴 여지가 있다”며 “소방 활동을 방해한 차량의 경우 배상을 받으려는 이들이 책임 소재를 입증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광주=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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