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지 못한 분 자꾸 생각나”…오송 참사 그후 의인들의 삶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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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0월 19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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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시민 구한 남색 셔츠 의인 정영석 씨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성 끌어 올려 구한 한근수 씨

지난 7월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15일 아침 창밖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세종시에서 충북 증평군으로 출퇴근하는 정영석 씨(45)는 조금 일찍 집 밖을 나섰다. 증평군 수도사업소 하수도팀장인 그는 증평군 내 보강천이 범람해 침수 사고가 날까 봐 우려하며 오전 8시경 차를 몰고 출발했다.

30분 정도 흘러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지나는 중이었다. 갑자기 물이 지하차도 안으로 들어왔다. 차량 타이어 절반 정도가 물에 잠겼다. 정 씨 앞에 있던 다른 차량은 멈춰서 나아가지 못하다가 간신히 붕 하고 움직였다. 정 씨도 따라 가려 했지만 잠깐 사이 타이어 전체가 잠길 정도로 지하차도에 물이 찼다.

정 씨 차량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했다. 곧 차량이 물에 떴다. 정 씨는 창문으로 탈출했다. 차 밖으로 나오니 허리춤까지 물이 찼다.

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 아무런 의심 없이 진입하는 차들. 반대편 출구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바닥에 들어찬 강물이 보인다. 강물을 헤치며 전진해 보지만 거센 물살에 속도는 점점 줄어든다. 채널A
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 아무런 의심 없이 진입하는 차들. 반대편 출구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바닥에 들어찬 강물이 보인다. 강물을 헤치며 전진해 보지만 거센 물살에 속도는 점점 줄어든다. 채널A
정 씨는 지하차도 양쪽 끝에 튀어나온 연석으로 올라갔다. 정 씨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여성 1명과 남성 2명도 각자 차량에서 내려 정 씨 옆에 섰다. 연석 위에 올라가 있던 4명은 빨리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에 게걸음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물살이 세 10m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결국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물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키가 작았던 여성은 얼굴이 푹푹 물에 잠기자 “죄송합니다. 가방 좀 잡을게요”라며 정 씨를 잡고 둥둥 떠 있었다.

물은 점점 차올랐다. 정 씨는 수영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차량 지붕 위로 올라갔다. 여성도 수영해 정 씨를 따라갔지만 지붕 위로 올라갈 힘이 없었다.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외침에 정 씨는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4명 모두 차량 지붕 위로 대피한 뒤 정 씨는 자신의 옷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찾았다. 119에 신고해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알렸다. 정 씨가 신고 전화를 한 그 찰나에 지하차도 천장까지 손이 닿을 만큼 물이 가득 차올랐다. 모두 패닉 상태였다.

정 씨는 지난해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했던 침수 사고를 떠올렸다. 당시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에어포켓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한 정 씨는 천장을 훑어봤다. 철제 구조물이 지하차도 끝부분까지 연결된 게 보였다. “여기 있으면 죽으니 나갑시다” 정 씨가 외치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어요”라며 같이 힘을 냈다.

조명 철제물을 붙잡고 탈출하려는 사람들. 채널A
조명 철제물을 붙잡고 탈출하려는 사람들. 채널A
양손으로 철제 구조물을 잡고 발로 기둥을 짚으며 옆으로 이동했다. 100m쯤 갔을까. 물은 더 차오르고 체력은 떨어졌다. ‘이게 끝인가’라고 생각했다. 정 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내는 3개월 전 갑상샘암 진단을 받아 3일 후 수술받기로 한 상황이었다. ‘일단 기운 한 번 내보자,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이를 악물었다. 4명이 겨우겨우 이동하던 중 남성 1명은 물살에 휩쓸렸다. 결국 이 남성은 목숨을 잃었다.

3명이 간신히 지하차도 끝에 왔을 때 물은 천장까지 거의 다 찬 상황이었다. 정 씨 뒤를 따라오던 나머지 2명은 철제 구조물에서 천장 와이어로 옮겨 탔다. 정 씨도 옮겨 타려 했지만 본인까지 와이어를 잡으면 끊어질 것 같아 끝까지 철제 구조물을 잡고 탈출했다.

완전히 진이 빠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익사 직전이었다. 꼬르륵꼬르륵하고 물속에 잠기려는 순간 눈을 뜨자 스티로폼이 보였다. 스티로폼을 잡고 둥둥 떠 있다가 지하차도에서 일찍 탈출해 난간 위에 피신해 있던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 좀 잡아주세요”라고 도움을 청했다.

간신히 난간 위로 올라가 숨을 돌린 뒤 물에 떠 있던 여성의 손을 잡았다. 끌어올리려 했지만 둘 다 힘이 없어 꺼내다가 놓치고, 또 꺼내다가 놓쳤다. 정 씨는 “자세를 바꿔서 꺼내 줄 테니 난간 꼭 잡고 있으세요! 포기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외친 뒤 자세를 바꿔 두세 번 시도해 여성을 난간 위로 끌어올렸다.

난간 위에서 1시간 정도 버티던 사람들은 119의 고무보트를 타고 구조됐다. 정 씨는 이후 아내의 수술 일정을 챙기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혹시 제가 차를 끌고 지하차도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따라 들어와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죄책감 때문에 1~2주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정 씨는 아직도 밤마다 잠드는 게 쉽지 않다. 두통이 있고 약도 계속 먹는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떠오른다. 다른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로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너무 충격받아 당시 상황이 아예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무서워서 블랙박스 영상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정 씨는 본인 차량 바로 뒤에 있던 1t 트럭 운전자의 생사가 걱정됐다. 경찰에게 물으니 다행히 해당 트럭 운전자는 일찍 탈출했다고 한다. 정 씨는 아주 조금씩 죄책감을 내려놓고 있다.

“제가 살아 돌아와서 느낀 게 ‘행복이라는 건 별것 없구나’였어요. ‘일상에서 아무 일이 없으면 행복한 건데 굳이 돈과 명예를 찾을 필요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과도 ‘우리 새 생명 얻은 기분이니 다시 행복하게 잘 살자’고 인사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의인 정영석 씨. 본인 제공
오송 지하차도 의인 정영석 씨. 본인 제공
정 씨가 구해준 여성은 사고 당시 남색 셔츠를 입고 있던 정 씨를 떠올리며 언론 인터뷰에서 정 씨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정 씨는 이렇게 ‘남색 셔츠 의인’이 됐다. 이 여성은 가족과 함께 정 씨를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의인상을 받은 정 씨는 너무 과분하다며 민망해했다.

“아마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저같이 했을 텐데 너무 과분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눈앞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누구나 손을 내밀어서 끄집어내지 않았을까요? 꼭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저 같은 행동을 했을 텐데 뭐 부끄럽게 그런 상을 주시나 싶었습니다.”

정 씨가 사람들을 구할 당시 또 다른 의인도 지하차도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애썼다. 타일 기능공인 한근수 씨(57)는 며칠 전 일하고 마감 못 한 부분이 있어 1t 트럭을 끌고 오송으로 향했다.

지하차도 중간쯤 가자 물이 고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은 점점 불어났다. 지하차도 밖으로 조금 올라가니 앞에 가던 차들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멈춘 상태였다. 한 씨의 트럭도 그곳에서 멈췄다. 옆으로는 버스가 지하차도 밖으로 나오던 중 멈춰버렸다.

뒤편에 있던 747번 버스가 앞으로 치고 나가 보려 하지만 멈춰버린다. 뒤따르던 트럭이 버스를 밀어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채널A
뒤편에 있던 747번 버스가 앞으로 치고 나가 보려 하지만 멈춰버린다. 뒤따르던 트럭이 버스를 밀어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채널A
한 씨는 재빨리 트럭 문을 열고 중앙분리대로 올라갔다. 이때 옆에 있던 차량에서 여성 1명이 창문을 열고 탈출을 시도했다. 여성은 다른 차량 지붕으로 올라가려 했으나 자꾸 미끄러져 실패했다. “도와주세요!”라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은 한 씨는 여성의 손을 잡아끌어 중앙분리대를 잡을 수 있게 도왔다.

다른 차량에서도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차 문 사이에 발이 끼었다. 이를 본 한 씨는 다가가 차 문을 손으로 잡아당기고, 차량을 발로 밀어 운전자의 발을 빼냈다. 그러나 차 문이 좁게 열려 운전자는 나올 수 없었다. 곧바로 한 씨는 차량 뒷문을 열었다. 약간의 공간이 있었으나 너무 겁을 먹은 운전자는 그대로 경직됐다. 한 씨 손도 운전자에게 닿지 않았다. 결국 한 씨는 현장을 벗어나 터널 바깥쪽으로 향했다.

“차들이 터널 안으로 떠내려갔습니다. 물살이 너무 셌어요. 그때 ‘저분은 죽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이 자꾸 생각나요. 버스에서도 조그마한 창문을 열고 ‘살려달라’ ‘여기 사람 있다’고 소리쳤지만 그쪽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버스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살려달라고 했던 분이 많이 기억나요.”

기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한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의 손에는 탈출하던 과정에서 다친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심적인 상처가 더 크게 남았다.

“제가 물속에서 힘들었던 것보다 그분들을 도와주지 못한 게 너무 충격이에요. 못 나오고 계신 분을 더 적극적으로 구해드리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제대로 빨리 구해드렸으면 나오셨을 텐데…….”

한 씨도 아직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도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사실 지하차도 쪽을 보기도 싫다”고 토로했다.

의인상을 받았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씨는 “‘이걸 받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희생된 분들도 계시고 엄청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탈출하려는 사람이 보이는데 절대 무시할 수 없고 누구나 다 도와드리려 했을 거다. 의인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사건·사고는 항상 있으니 더 좋은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씨가 구해준 여성은 경찰을 통해 한 씨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여성은 한 씨에게 전화로 고맙다고 전한 뒤 직접 만나서도 선물을 건네며 감사함을 표했다.

오송 지하차도 의인 한근수 씨.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오송 지하차도 의인 한근수 씨.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한 씨는 정신적으로 힘든 것뿐 아니라 생계의 어려움도 겪고 있다. 그는 “차를 잃었고, 차 안에 있던 공구도 다 못 쓰게 됐다. 물기를 말리고 닦으면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망가졌더라. 일을 하려면 새로 구입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한 씨는 오송 지하차도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더 상처받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들을 보면 좋지 않은 댓글도 보이는데 그런 댓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잘못을 해서 희생당한 게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고, 아직도 힘들어하는데 그런 것으로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언가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좋지 않게 보는 시선에 마음이 아픕니다.”

오송 지하차도는 당시 인근 미호강 제방 붕괴로 침수됐다. 이 사고로 사망자 14명과 부상자 11명이 발생했다. 현재 참사가 발생한 지 석 달째이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감감무소식이다. 피해자들은 이른 시일 내 검찰 수사가 마무리돼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길 기다린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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