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에 시달리다 제 동생 이은총이 죽었습니다”…유족, 사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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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9월 9일 1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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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7일 전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하다 흉기에 찔려 숨진 故 이은총씨.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지난 7월17일 전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하다 흉기에 찔려 숨진 故 이은총씨.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인천에서 전 연인에게 스토킹(과잉접근행위)을 당하다 흉기에 찔려 숨진 여성의 유족이 피해자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자의 유족 A씨가 ‘스토킹에 시달리다가 제 동생이 죽었습니다’란 제목으로 글을 올려 사건의 전말을 직접 전했다.

A씨는 “지난 7월17일 오전6시께 제 동생 이은총이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해자는 은총이의 전 남자친구였다. 우연히 테니스 동호회에서 만나 연인 관계가 됐고, 은총이의 소개로 같은 직장까지 다니게 됐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가해자는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피해자 이씨에게 계속해서 원치 않는 결혼을 종용했고, 점점 집착과 다툼이 심해져 이씨는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됐다.

하지만 가해자는 지속적인 연락으로 이씨를 괴롭혔고, 차로 뒤를 쫓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씨는 직장에서 가해자와 계속 마주쳐야 했으므로 가능한 한 좋게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이씨는 가해자에게 팔에 새까만 멍이 들 때까지 폭행을 당했다. 이에 결국 이씨는 지난 5월18일 경찰에 스토킹 피해 신고를 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스토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월1일, 여전히 이씨와 같은 회사를 다니던 가해자는 연애 때 찍었던 두 사람의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인물소개)에 올렸다.

이씨는 제발 사진을 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가해자는 사진을 내리지 않았고, 개인 SNS에도 똑같은 사진을 올렸다. 다음날 가해자는 또다시 이씨의 차 뒤를 위협적으로 따라붙었다.

지친 이씨는 “사진을 내려주고 부서를 옮기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했고, 가해자에게 각서를 받아 고소를 취하해 줬다.

가해자와 피해자 이은총씨가 메신저로 주고받은 대화.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가해자와 피해자 이은총씨가 메신저로 주고받은 대화.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며칠 지나지 않은 6월 9일, 가해자는 또 이씨를 찾아왔다. 집 앞에 나타난 가해자가 두려워 이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가해자는 접근금지명령을 받고 4시간 만에 풀려났다.

그렇게 수차례 스토킹 위협을 받던 이씨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으나 6월29일 경찰은 이씨의 집에 찾아와 “가해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면 스마트워치를 반납해달라”고 안내했고, 이씨는 스마트워치를 반납했다.

A씨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 알게 된 건 7월13일부터 17일까지 가해자가 접근금지명령을 어긴 채 집 앞에서 은총이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며 “그렇게 7월17일 오전 6시께 출근하려고 나갔던 성실한 우리 은총이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해자의 칼에 찔려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려달라는 은총이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뛰쳐나온 엄마는 가해자를 말리다가 칼에 찔렸고, 손녀가 나오려고 하자 손녀를 보호하는 사이 은총이가 칼에 찔렸다”고 범행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전했다.

A씨는 “은총이가 칼에 맞아 쓰러지자 가해자는 자신도 옆에 누워 배를 찌르곤 나란히 누워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소름 끼친다. 엘리베이터 앞이 흥건할 정도로 피를 흘린 은총이는 과다출혈로 죽었다”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은총씨가 스토킹범의 흉기에 찔린 장소.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이은총씨가 스토킹범의 흉기에 찔린 장소.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A씨는 또 스토킹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금 9월 첫 재판을 앞두고 보복살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스토킹 신고로 인해 화가 나서 죽였다는 동기가 파악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가해자는 제 동생을 죽인 거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접근금지명령도 형식에 불과했다. 연락이나 SNS를 안 한다고 끝날 문제인 거냐. 스마트워치는 재고가 부족하고 심지어 사고가 일어나야만 쓸모가 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경찰이 출동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며 동생이 끝내 보호받지 못한 현실을 씁쓸해했다.

A씨는 “죽은 은총이의 휴대폰에는 스토킹과 관련된 검색 기록이 가득했다. 얼마나 불안했을지 되돌아보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 가해자를 말리며 생겼던 상처 자국을 보며 엄마는 은총이가 생각난다며 매일 슬픔에 허덕이고, 6살 은총이의 딸은 엄마 없이 세상을 살아가게 됐다”며 고인 사망 이후의 불행한 일상을 토로했다.

끝으로 A씨는 “제발 부디 은총이의 딸이라도 안전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많은 피해자분들이 안전해질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누리꾼에게 탄원서 작성을 부탁했다.

이은총씨의 어머니도 가해자의 흉기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이은총씨의 어머니도 가해자의 흉기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30대 남성으로, 지난 7월17일 오전 5시53분께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전 여자친구였던 30대 여성 이씨를 스토킹 해오다 급기야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남성은 앞서 2월19일 경기 하남시에서도 이씨 폭행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씨는 경찰에 6월2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남성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6월5일 고소를 취하했고, 6월9일 남성은 또다시 이씨의 주거지 인근을 배회했다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남성은 당일인 6월9일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났으나,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에 잠정조치 신청을 했고, 남성은 6월10일~8월9일 접근금지와 통신제한 결정을 받았다.

남성은 6월9일의 범행으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으나, 한 달 넘게 범행을 하지 않다가 7월17일 이씨의 집을 찾아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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