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578대 교체주기 지나… 10대중 3대 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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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교체주기 넘은 노후기종 급증
고장 민원도 2년새 2.5배로 늘어
교체 예산은 올해 10대 수준 그쳐
수내역 사고 부품마모 탓… 교체 시급

서울 지하철 1~8호선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10대 중 3대는 교체 주기(20년)를 지난 노후 에스컬레이터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역 역주행 사고의 원인이 부품 마모로 밝혀진 만큼 서울 지하철도 노후 에스컬레이터를 그대로 둘 경우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1~8호선에서 가동 중인 에스컬레이터 1827대 가운데 지방공기업법 시행규칙에 따라 자체 설정한 교체 주기(20년)를 넘긴 것이 578대(31.6%)에 달했다. 에스컬레이터의 교체 주기는 일반적으로 15~20년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괄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지하철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의 연한이 20년 이상 된 경우 고장이 많이 나거나 노후화가 빨리 진행되면서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상당수의 노후 에스컬레이터가 교체될 때까지 하염없이 순번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올해 노후 에스컬레이터 교체 예산으로 책정한 돈은 52억5000만 원에 불과하다. 에스컬레이터 대당 교체 비용(약 5억5000만 원)을 고려하면 연내 10대를 바꾸기도 빠듯한 금액이다. 매년 올해 예산 수준으로 배정된다면 교체 주기를 넘긴 에스컬레이터는 5년 후 715대까지 늘면서 전체 에스컬레이터의 40%에 육박하게 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지난해만 약 63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정난이 심각한 상황이라 교체 속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다”며 “최근 수내역 사고가 있었던 만큼 일단 자체 점검과 정비를 강화하고 연 1회 법정 점검을 철저하게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4일 오후 7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역 2번 출구 앞.

8일 역주행 사고로 중상 4명, 경상 14명이 발생한 에스컬레이터는 운행이 중단된 채 가림막으로 출구 전체가 막혀 있었다. 수내역 1번 출구를 이용하던 김모 씨(37)는 “3번 출구는 지난해부터 에스컬레이터 신설 공사 때문에 막혀 있고 4번 출구 앞에도 ‘고장·수리 중’이란 문구가 있는데 어디로 나가라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옆에 있던 직장인 심모 씨(41)는 “사고 이후 불안해서 되도록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현장 조사를 한 서울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철도특사경) 관계자는 “내부 모터와 감속기를 연결하는 구동장치 연결 부위가 마모되면서 동력 전달이 안 된 상태에서 탑승객 무게 때문에 역주행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역주행 방지 장치에도 결함이 있어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9년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에서 사고가 발생한 사례는 올해 알려진 것만 두 번째다. 올 2월 인천 지하철 1호선 캠퍼스타운역에서도 에스컬레이터 발판이 안전 손잡이(핸드레일)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면서 70대 여성 2명이 뒤로 넘어져 타박상을 입고 그중 1명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천교통공사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는 역이 생긴 2009년 설치됐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두 에스컬레이터의 경우 교체 주기가 남았는데도 사고가 발생해 승객이 다치는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 교체 시기 몰리며 고장 민원 급증

서울 등 수도권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2000년 전후 대거 설치됐다. 그러다 보니 최근 자체 설정한 교체 주기(20년)를 넘긴 에스컬레이터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노후화로 고장도 증가세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0년 127건에 불과했던 에스컬레이터 고장 민원은 2021년 185건, 지난해 323건으로 늘었다. 2년 만에 2.5배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 요금이 2015년 이후 8년째 동결되고 지난해만 63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이 심각해 교체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올해처럼 50억 원 안팎의 예산만 배정된다면 노후 에스컬레이터가 누적되면서 사고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수내역처럼 사용 기간이 10~15년인 기종까지 포함하면 향후 10년 안에 교체 주기가 다가오는 서울교통공사 관할 에스컬레이터는 1148대(62.8%)에 달한다.

조만간 에스컬레이터 교체 주기가 다가오는 건 2009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9호선도 마찬가지다. 운영사인 메트로9와 서울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9호선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666대 중 433대(65%)가 10년 이상 15년 미만 기종이었다. 이에 따라 5년 후부터 9호선 에스컬레이터 교체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메트로9 관계자는 “교체 주기가 다가온 433대에 대해선 서울시와 협의해 2031년까지 교체할 방침”이라고 했다.

수내역처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관리하는 역 에스컬레이터 2640대 중 479대(18.1%)가 자체 규정상 교체 주기 15년을 초과한 상태다. 121대(4.6%)는 20년을 넘겼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규에 따른 교체 주기는 15년이지만 안전진단을 통해 노후도 등을 판단한 뒤 교체 대신 개량을 추진하고 있다”며 “올해 교체 주기가 도래한 에스컬레이터 중 120대를 약 130억 원을 투입해 개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점검 강화하고 교체 순번 정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에스컬레이터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수내역 역주행 같은 사고가 서울 등 수도권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예산 문제 때문에 대대적 교체가 어렵다면 정밀 점검이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내역처럼 안전점검에서 ‘양호’ 판정을 받고 한 달 만에 사고가 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위험도를 파악해 교체 순서를 미리 정하는 등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수철 한국승강기대 교수는 “눈에 보이는 부분은 물론이고 내부 정밀 진단을 통해 부품이 마모된 부분은 없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보도록 점검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교수도 “예산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어렵다면 위험도가 높은 에스컬레이터를 먼저 교체하고 점검 주기를 좀 더 촘촘히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성남=이경진 기자 lkj@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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