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3·1절 특수 기대하기 어려워”…빛바래가는 ‘휘장골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8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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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있는 휘장골목의 모습. 휘장골목은 1950년대부터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며 태극기를 판매하는 상권으로 유명해졌지만 3·1절을 앞둔 이날 폐업해 문을 닫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10여 년만 해도 하루에 100장까지도 팔았어요. 오늘은 딱 한 장 나갔네요.”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일대 이른바 ‘휘장골목’에서 45년째 태극기를 판매해왔다는 지광남 씨(78)는 27일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이젠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어 앞으로 3·1절 특수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한산한 골목길을 가리켰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뒤편에 있는 휘장골목은 1950년대부터 태극기 도소매 업체가 모여있는 상가 거리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관수동 일대에는 상패나 명패, 트로피 등 각종 휘장을 제작해 판매하는 업체들이 몰려 있었다. 이곳 상인들은 “서울에서 열린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올림픽을 치르면서 한국의 휘장산업이 수준급에 올랐다”며 “2002년 월드컵 때까지만 해도 태극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3·1절을 이틀 앞둔 휘장골목엔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골목 초입부터 30m 넘게 줄지어 있는 가게 5곳은 폐업한 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가게 안 태극기들은 색깔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이곳 상인들에 따르면 20여 년 전 휘장골목에는 한때 가게가 1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60여 곳으로 줄었고 상인들도 150명 남짓해 한창때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태극기를 팔던 곳도 휘장골목에 10곳 넘게 있었지만 현재는 2, 3곳만 남았다.

상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변 상권이 무너져 휘장골목에서 활기가 사라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휘장골목에서 30년째 태극기를 판매해온 김모 씨(73)는 “태극기 상권으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었는데 이젠 태극기를 파는 가게를 한 손에 꼽을 지경”이라며 “5, 6년 전부터 일대에 모텔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상권 자체가 변해버렸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태극기를 팔았던 가게들은 대부분 폐업하거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기 지역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극기를 팔던 가게들은 값싼 중국산 태극기가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가격 경쟁에서도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 씨는 “공공기관에서조차 최저가 입찰로 값싼 중국산 태극기를 납품받기 시작해 국산 공장들이 다 폐업했다”며 “건곤감리도 제대로 박혀 있지 않은 중국산 태극기에 국산 태극기가 밀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각종 집회가 이어지고 있지만 태극기 수요에는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30년 동안 태극기를 판매해 온 김모 씨(53·여)는 “태극기 집회가 한창일 때 잠깐 찾는 분들도 있었다”면서도 “오히려 보수 성향의 집회로 인식되면서 태극기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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