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때는 다 야근” 말하는 순간 MZ들은 사직서를 품는다[사표 품은 퇴준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4일 2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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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으려는 사람들

“한 달 동안 매일 야근을 했어요. 계약서와 다르고 주 52시간 근무제도 어기는 거라 몇 번 싫은 내색을 했더니 사장이 눈치를 주더군요.”

생애 첫 직장으로 한 중소기업에 2021년 4월 입사했던 최재연(가명·26·여) 씨는 3개월 만에 선임이 퇴사하면서 온갖 일을 떠맡았다. 주말 출근에 주 6일 근무를 밥 먹듯이 하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지자 최 씨는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는 곳으로 이직했다. 최 씨는 “전 직장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0점이었다면 현 직장 만족도는 90점”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급증하는 ‘청년 퇴직’ 현상의 원인과 해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4~11일 재단법인 청년재단과 함께 ‘청년 이·퇴직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또 청년 29명을 대상으로 포커스그룹 및 개별 인터뷰를 실시했고, 설문 및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전문가 10명의 조언을 들었다. 전문가들이 청년층 퇴사를 막기 위한 ‘3대 키워드’로 제시한 건 △약속 △자율 △성장 가능성이었다.

● “입사 때 약속한 내용 지켜야”
동아일보와 청년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만 19~34세 청년 응답자 중 47%는 청년층 퇴사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근로환경 개선’을 첫 손에 꼽았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은 입사할 때 약속과 다른 상황을 불합리하게 받아들인다. 계약된 근로조건과 근무시간을 지키는 등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재택근무 폐지를 결정하자 노조 가입률이 상승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며 “그만큼 청년층이 워라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정대로 워라밸을 보장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봉준 미래인재연구소 소장은 “워라벨에 대한 욕구는 근무시간에만 대충 일하겠다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회사도 정해진 기준에 맞춰 성과를 끌어내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자율성 살리는 직장 분위기로”
전문가들은 “수직적이거나 강압적인 조직문화는 청년층을 떠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최선민(가명·28) 씨는 2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20년 2월 새 직장으로 옮겼다. 최 씨는 “일선에서 경험한 걸 바탕으로 여러 차례 건의했는데 상사들은 ‘내가 너보다 잘 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견디다 못해 퇴사하겠다고 하자 회사는 “연봉을 100% 올려주겠다”고 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최 씨는 거절하고 이직을 택했다. 그는 “새 직장 급여는 예전과 비슷하다”며 “급여 못지 않게 자율적으로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동아일보-청년재단 조사에서 청년 응답자들이 ‘근로환경 개선’에 이어 청년층 퇴사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꼽은 것은 ‘더 높은 임금 제공’과 ‘수직적·강압적 조직문화 개선’(각각 21%)이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성세대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머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입사 초기 교육을 위해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며 “청년층이 왜 떠나려고 하는지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 “성장가능성 있어야 안 떠난다”


입사 6개월째인 신입사원 김영민(가명·29) 씨는 도전적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핀테크 스타트업에 취직했지만 직장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0점이라고 했다. 김 씨는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며 “도전적이고 성취감을 느끼는 업무를 할 수 없다면 조만간 이직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규연(가명·28·여) 씨도 “현재 일하는 곳이 자아실현이 어려운 부서라 어학 공부와 대학원 입학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며 “6개월 내 퇴사할 생각”이라고 했다.

동아일보-청년재단 조사에서 청년들이 퇴사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열악한 근무환경(27%)’이었고 두 번째는 ‘개인의 낮은 성장가능성(19%)’이었다. 전문가들 역시 “젊은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경영컨설팅회사 와이즈멘토의 조진표 대표는 “롤모델이 될 만한 리더가 얼마나 많은지도 청년층에게는 직장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라며 “보고 배울 수 있는 상사 밑에서 일해야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은 “청년층은 피드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정확한 피드백을 전달하면서 소통하고 성장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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