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처럼 환한 거리… 코로나 침체기에도 ‘빛 공해’ 민원은 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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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비만-당뇨-우울증 등 생체리듬 교란시켜 질병 유발
폐점 뒤 심야에도 켜져있는 간판 등 ‘광고조명’ 민원 증가폭 가장 크지만
소규모 점포 조명은 규제 사각지대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번화가가 건물들의 거대한 광고 조명과 장식 조명들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해가 진 지 오래지만 밝은 조명 때문에 거리는 대낮처럼 밝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번화가가 건물들의 거대한 광고 조명과 장식 조명들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해가 진 지 오래지만 밝은 조명 때문에 거리는 대낮처럼 밝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2월 30일 저녁 서울의 한 번화가 거리는 2022년 마지막 금요일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미 해가 져서 하늘은 캄캄했다. 그러나 거리는 식당과 술집의 간판, 실내외 조명 불빛으로 대낮처럼 환했다. 특히 불빛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두거나, 가게 외관을 조명으로 장식해 놓은 곳들이 많았다. 일부 가게는 조명 빛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렇게 작은 규모의 가게 조명에는 별다른 규제가 없다. 법에 따라 길이 10m 이상인 간판이나 5층 이상 혹은 연면적 2000m² 이상 건축물의 장식 조명만 규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 5년간 민원 13% 증가… 부산 3.7배 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중단됐던 각종 행사들이 3년 만에 재개되면서 밤거리, 상점들도 오랜만에 늦게까지 불을 밝혔다. 환한 조명 불빛에 즐겁고 설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괴로운 사람들도 있다. 빛 공해 때문이다. 빛 공해 방지법에 따르면 빛 공해란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과도한 빛 또는 조명 밖으로 새어나오는 빛이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방해하거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뜻한다.

빛 공해는 생체리듬 가운데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하는 ‘서케이디언 리듬(circadian rhythms)’을 교란한다. 이로 인해 불면증, 비만, 당뇨, 우울증 등이 유발된다. 심하면 멜라토닌의 합성을 억제해 유방암과 직장암, 전립샘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의 시도별 빛 공해 민원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빛 공해 민원은 2016∼2021년 사이 5년간 약 13%(1.13배) 늘었다. 경남 지역은 같은 기간 민원이 1.6배 늘었고, 대구는 2배, 부산은 3.7배 늘었다.

2021년 전국 민원 건수는 7915건으로 2013년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가장 많았던 2018년(7191건)과 비교해도 10% 이상 늘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침체되고 외부 활동이 줄면서 대기오염이 줄었는데, 빛 공해 민원은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이다.

가게 간판이나 조명은 가게 문을 닫은 뒤에도 켜놓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밤에 나가지 않고 집 등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공해 피해를 호소하는 건수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민원 발생 현황을 원인별로 살펴본 결과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간판, 광고판 등 광고 조명 민원이다. 2017년 1550건에서 2021년 2784건으로 4년 새 1.8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의 전체 증가율(1.1배)보다 증가폭이 크다.

2013년 시행된 빛 공해 방지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빛 공해 발생 우려 지역 내 조명은 정해진 ‘빛 방사(放射) 허용기준’에 따라 규제할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 점포 광고 조명은 그 대상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눈에 거슬릴 정도의 밝은 조명을 쓴다 해도 지자체에 민원을 넣는 것 말고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 전국 빛 공해 지도 구축 중
사각지대는 또 있다. 건물 외벽을 대형 스크린처럼 꾸미는 ‘미디어파사드’ 같은 조명 장식도 5층 이상, 연면적 2000m² 이상 건물에 설치할 경우에만 규제가 적용된다. 밤이면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버스 정류장 조명도 현행법상 규제 대상이 아니다.

빛 공해 전문가인 김훈 강원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광고나 장식 조명은 공간 조명(가로등, 보안등)과 달리 사적 영역이고 허가가 필요한 대상도 아니라 (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점포 간판의 경우 대부분 아크릴 소재라 빛이 사방으로 골고루 퍼져나가기 때문에 아래뿐 아니라 사방을 환하게 비춰 빛 공해 소지가 크고 에너지도 낭비된다”며 “관련법을 통해 허가제나 신고제 등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제2차 빛 공해 방지 종합계획(2019∼2023년)이 올해 완료됨에 따라 제3차 계획을 짜면서 여러 사각지대들을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대기나 수질 오염, 소음 등 다른 공해와 마찬가지로 빛 공해도 그 상황을 시각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전국 ‘빛 공해 지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빛 공해#광고조명 민원 증가#규제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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