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인종·국가 혐오 안돼”…법에 첫 명시한다

  • 뉴시스
  • 입력 2020년 12월 11일 13시 42분


정부, 사회관계장관회의 '다문화 가족 포용대책'
빠르면 내년 상반기 입법 추진…포용 선언 의의
처벌 규정 추가는 없어…"모욕죄 등에 제재 가능"
성차별적 국제결혼 광고 삭제, 형사처벌도 추진
군에서 급식대체품목 지급…학교는 2시간 교육

누구든지 특정 문화·인종·국가와 관련한 혐오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법에 처음 명시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이나 광고물 등에서 다문화 상대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나 조례는 있었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다문화 차별 금지법 처음…포괄적 차별금지법도 필요”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은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누구든지 특정 문화·인종·국가 관련 혐오 발언으로 다문화가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다문화 가족에 대한 차별해소, 인권보호, 수용성을 제고하는 ‘다문화가족 포용대책’을 논의했다.

이번 대책은 ‘모든 가족을 차별없이 포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 구현’을 목표로 정했다. 이를 위해 ▲상호문화 존중을 통한 다문화 수용성 제고 ▲인권보호 강화 ▲균등한 기회 보장 ▲사각지대 없는 복지서비스 4개 방안 아래 다양한 정책을 준비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다문화 계층에 대한 차별 금지를 법에 명시하겠다는 대목이다.

그동안 다른 문화·인종·국가를 차별하거나 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등에 ‘방송은 인종 간 차별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거나, 광고 관련 법령에 ‘인종차별적 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존재했다. 특정 직군이나 직종, 분야에 국한된 규범이었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문화 관련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는 그간 법에 없었다. 법이 개정된다면 우리 사회가 ‘더는 다문화 계층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차관은 “처음으로 (다문화 관련) 차별적인 발언,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일 것”이라며 “누구든지 특정 국가나 또는 인종이나 또는 문화와 관련하여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한다는 차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이 고쳐져도 차별, 혐오 표현을 한 사람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나 처벌 규정이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는 다른 법을 준용하는 방법으로도 제재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 차관은 “다문화가족법을 개정하면서 법 자체에 제재 규정은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런 혐오발언이 수위가 심각해서 형법상 모욕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면 현재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며 “제재 효과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에 원칙을 명시하면서 저희가 가이드북 같은 걸 만들어 어떤 것들이 그런(다문화 관련) 혐오발언이 될 수 있는지 이해를 돕기 위한 것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문화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지지 뜻을 명확히 했다. 김 차관은 이날 관련 질의를 받고 “헌법상의 평등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이나 출신 국가, 성적지향, 사상, 종교 등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이뤄지는 차별을 구체적으로 금지하고 소수자들을 구제하는 기본법이다. 국회에는 현재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도 ‘평등 및 차별금지법에 관한 법률안(평등법)’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문화 인구 전체 2% 달해…국제결혼 광고 규제·정책 심의 강화

다른 민족, 국가, 문화를 가진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여가부에 따르면 다문화 가구원은 지난해 기준 10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1%에 달했다. 이들 사이에서 출생한 영아는 1만7939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5.9%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10년 넘게 머무르는 결혼이민자·귀화자 비율은 2016년 28.2%에서 2019년 39.3%로 3년만에 11.1%포인트 늘어났다.
하지만 국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얼마나 받아들이는지 나타내는 지표인 ‘다문화수용성조사’ 결과는 역행했다. 2015년 54.0점에서 2018년 52.8점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다문화 가족에 대한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과 동시에 대책을 내놓은 배경으로 풀이된다.

여가부는 성을 상품화하거나 인종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일부 결혼중개(국제결혼) 광고를 규제하기 위한 법 개정에 착수하고, 점검도 강화한다.

구체적으로 국제결혼중개 광고물에 얼굴, 키, 몸무게 등을 포함하는 행위를 거짓, 과장 광고로 판단해 금하는 개정안이 추진 중이다. 현재 법제처 심사 단계에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공동으로 불법적인 온라인 광고를 규제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 온라인 광고 상시점검 체계를 만든다. 신고가 접수되면 여가부가 통보해 수사기관이나 방통위가 삭제, 행정처분, 형사처벌에 나서는 형태다.

정부 정책에서 다문화 가족을 차별하지 않도록 여가부의 심의 역할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관계 부처가 법을 개정하거나 정책, 사업을 할 때 다문화 계층에 대한 차별이 없도록 점검해 개선을 권고하는 가칭 ‘특정다문화영향평가’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김 차관은 “기초생활보장법상에 다문화가족에 대해서 차별적인 요소들이 일부 있어보여 내년도 실태조사를 해서 제도 개선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보려 한다”며 “ 다문화 가정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복지, 고용 관련 분야를 우선적으로 영향평가를 해 보고자 한다”고 했다.

경제·교육·복지·군입대 지장 없도록 제도 손질

정부는 다문화 계층의 경제 활동, 교육격차 해소, 군 입대에서 실질적인 차별이 없도록 제도를 다듬기로 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통·변역사가 늘어나고, 기업이 두개 이상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이중언어 인재를 발굴해 채용하도록 지원한다. 결혼이민여성도 경력단절 극복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도 확충한다.

복지 차원에서는 사실혼 관계에서 한부모가 된 결혼이민자도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여가부와 보건복지부가 함께 기초생활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결혼이민자 현황을 조사해 정책 개선에 착수한다.

외국인 결혼이민자는 상대국이 우리 국민에 적용하는 것과 유사한 수준을 적용한다는 상호주의 원칙과 관계없이 범죄 피해를 입으면 구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을 추진한다.

군에서는 채식주의자 등 다양한 문화를 가진 장병을 위해 급식대체품목을 지급할 수 있도록 방침을 개정한다. 병역판정검사, 입영안내 시부터 훈련병으로 입대한 다문화 장병이 식생활에 무리가 없도록 개선한다.

또한 다문화 장병의 정의를 ‘부 또는 모가 외국 국적인 사람’에서 ‘배우자가 결혼이민자인 사람’으로도 확대한다.

교육 당국은 모든 학교에서 연간 2시간 이상 다문화 관련 교과·비교과 활동을 실시하도록 권고한다. 여가부는 내년 중 다문화 가족 부모를 위해서도 사회진출과 학력 신장을 지원하는 ‘다문화 부모학교’ 시범 운영에 나선다.

다문화 청소년의 진로 컨설팅을 지원하고, 진학 관련 정보를 다문화 정보제공 포털 ‘다누리’에 제공한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에 대해 다문화 이해교육을 단계적으로 강화한다. 관련 강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자격증 도입도 검토한다.

일부 지자체에서 소득에 상관없이 다문화 가족을 시혜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기준을 강화한다. 다문화가족 국민주택 특별공급 대상자 선정의 배점 기준표에 소득기준과 미성년 자녀 수가 추가된다.

김 차관은 “향후 연도별 시행과정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사업 효과성을 면밀히 점검함으로써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다양성을 존중받는 다문화포용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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