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키운 외벽 패널 접착제… 울산엔 70m 고가사다리차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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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층 주상복합 화재 진화 왜 늦었나

생수 한병 콸콸… 열기 식히는 소방대원 9일 오후 울산 남구의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진압 작업을 마친 한 소방대원이 머리 위에 생수를 부어가며 열기를 식히고 있다. 울산=뉴시스
생수 한병 콸콸… 열기 식히는 소방대원 9일 오후 울산 남구의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진압 작업을 마친 한 소방대원이 머리 위에 생수를 부어가며 열기를 식히고 있다. 울산=뉴시스
울산의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의 대형 화재가 최초 신고된 뒤 5분 만에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당국의 초기 대응이 빨랐지만 화재가 완전히 진화된 것은 다음 날 오후 2시 50분으로 발생부터 진화까지 15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소방당국은 아파트 외벽을 꾸미는 가연성 접착제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는데, 시속 15.8km의 강한 바람으로 불이 꺼졌다 다시 되살아나는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33층으로 113m 높이의 아파트 고층에 접근할 수 있는 접이식 고가 사다리차가 울산에 단 1대도 없어 고층 진화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 강한 바람으로 헬기 등을 동원한 화재 진화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 “가연성의 외벽 패널 접착제가 불쏘시개 역할”
아파트 외벽을 꾸미는 알루미늄 패널의 접착제가 화재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패널은 알루미늄 판 사이를 실리콘 등 화학수지로 접착한 뒤 건물 외벽에 붙인다. 알루미늄 자체도 열에 강하지 않은 데다 불에 더 약한 폴리에틸렌보드 등으로 접착한 외벽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시각이다. 임주택 울산소방본부 생활안전계장도 9일 현장 브리핑에서 “외벽이 알루미늄 복합 패널이었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가연성 접착제로 마감을 하다 보니까 급격히 연소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접착제 등이 땔감 같은 역할을 해 화재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부산 해운대의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이후 30층 이상 주상복합 건물 외벽을 지을 때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재를 쓰도록 건축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는 2009년 4월 준공돼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경찰 등은 외벽의 정확한 소재와 규정 준수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 울산 고가 사다리차 없어… 부산서 3시간 뒤 도착

높이가 113m에 이르는 33층 아파트인데 고가 사다리차가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울산소방본부는 화재 초기 52m 사다리차를 동원했지만, 건물의 중간 층 정도에만 물을 뿌릴 수 있었다. 급히 부산소방본부에 72m 고가 사다리차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현장에 도착한 건 약 3시간 뒤인 9일 오전 5시경이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대 건물 23층 높이 정도의 화재 진압에 이용할 수 있는 70m 이상 고가 사다리차는 전국에 10대뿐이다. 서울과 경기, 인천에 2대씩 있으며 부산과 대전, 세종, 제주가 1대씩 보유하고 있다.

고가 사다리차가 없던 탓에 고층부의 경우 소방대원들이 각 가구에 일일이 진입하는 방식으로 화재를 진압해야 했다. 또 화재가 강풍이 부는 한밤중에 발생해 소방 헬기가 투입되지 못한 점도 빠른 진화를 불가능하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소방당국은 불이 난 다음 날인 9일 오전 6시경에야 헬기 1대를 투입했다.

○ 강풍에 새벽에 다시 불길 커져

“집 천장 에어컨 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하얀 연기도 흘러나와요.”

8일 화재 신고가 119에 처음 접수된 건 오후 11시 14분. 12층에 사는 한 주민은 신고 뒤 아파트 관리실에도 연락했다. 소방당국은 12층에서 신고가 들어왔지만 발화점은 ‘저층 발코니’로 보고 있다. 소방당국이 자체적으로 확보한 영상을 확인한 결과 다른 장소에서 먼저 불꽃이 시작된 장면이 나왔다고 한다.

발화점을 찾기 힘들던 화재가 빠르게 번진 건 강풍 탓이 컸다. 건물 바깥으로 번진 불이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아파트 전체로 피어올랐다. 당시 울산은 8일 오전부터 강풍주의보가 발효된 상태였다. 이 강풍을 타고 불티가 날아가 왕복 10차로 차도 건너편에 있는 대형마트 옥상까지 불이 옮겨붙었다.

고가 사다리차와 헬기 등이 투입된 9일 오전 6시경 불길이 어느 정도 잡혔는데 갑자기 18층에서 바람을 타고 33층 꼭대기까지 불길이 다시 번졌다. 이 때문에 18, 19층 등의 아파트 외벽 창문 등이 크게 휘는 등 고층에서 피해가 컸다.

울산=강성명 smkang@donga.com·김태성 기자
#울산 주상복합 화재#고가사다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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