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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제밀정 이덕선’ 처단한 애국지사 손자…한국인 됐다
뉴시스
업데이트
2020-08-12 15:49
2020년 8월 12일 15시 49분
입력
2020-08-12 15:48
2020년 8월 12일 15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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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운 선생 손자, 53세에 한국 국적 취득
대한국민회 가입…일제 밀정 처단에 앞장
25세에 무기징역 선고…11년 넘게 옥살이
법무부, 21명 독립유공자 후손에 국적 수여
“내가 오늘부터 국적, 한국 사람이에요? 오늘부터?”
12일 법무부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강송철(53)씨는 행사가 끝난 뒤 만난 기자에게 되려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이 됐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강씨는 태어날 때부터 한국인이었지만, 중국 국적을 갖고 50년 이상을 살았다. 53년 만에 한국인이 된 소감을 묻자 한국어로 천천히 “감동이다”고 말했다.
한국인인 강씨가 중국에서 태어난 것은 조부의 독립운동 영향이다. 강씨는 독립운동가 강기운 선생의 손자다.
강 선생은 1897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약관을 갓 지난 1920년 4월 만주 화룡현에서 대한국민회에 가입했다. 대한국민회는 홍범도 장군이 몸담았던 항일 독립운동 단체다.
경호부장 아래 경호원으로 있던 강 선생은 간도 일대에서 40여명의 독립군을 모집하는가 하면, 일본 경찰의 밀정인 이덕선, 윤달수, 김덕기 등을 처단하기도 했다. 두만강을 건너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 선생의 독립운동은 채 2년이 이어지지 못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훨씬 긴 시간 동안 모진 고초를 겪어야했다. 1922년 4월 무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약 11년3개월 옥살이를 해야했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일제 치하 감독에서 보내야했던 셈이다.
이후 강 선생은 한국을 떠났고 중국에 자리를 잡았다. 1944년 숨을 거둬 광복을 보지 못했다. 그는 1993년 건국훈장인 독립장을 받았다.
강씨는 이날 “할아버지가 감옥에서 11년간 고생하고 나오셨다”며 “안중근 의사 같이 혁명하면서 고생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할아버지 덕에 나는 이렇게 됐다”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손에는 태극기를 꼭 쥔채였다.
법무부는 이날 강씨를 포함해 총 21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여러분들의 선조께서는 자신의 삶을 버리시고 항일 투쟁과 조국 독립을 위해 정성과 목숨을 바친 고난의 길을 걸었다”며 “오늘의 대한민국은 독립유공자들의 불굴의 의지와 고귀한 희생정신이 있어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나라가 됐다”고 했다.
[과천=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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