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서 하나 발급조차… 3년째 못푸는 규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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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장애인증명서 온라인서 못떼, 장애인이 주민센터 가야 발급 가능
권익위가 권고해도 부처 안움직여… 혁신과제 884건 중 25% 시한 넘겨

1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민센터.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이용석 씨(52)가 무거운 유리문을 힘겹게 밀고 들어섰다. 영문 장애인증명서 발급을 신청하자 담당 직원은 “영문은 잘 안 찾으시던데…”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장애인이 외국 여행 때 증명서를 갖고 나가면 출입국 수속 시간을 줄이고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지만 공무원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가욋일인 셈이었다.

몇 분 뒤 주민센터 직원이 내민 영문증명서는 인적사항 같은 주요 사안이 몽땅 빠진 채였다. 이 씨가 일일이 영문 철자를 불러주면 직원이 손글씨로 빈칸을 채웠다. 좀 어려운 주소는 포털사이트 번역기를 돌려 베껴 적었다. 이 씨는 “손으로 쓴 문서를 외국에 가져가면 가짜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며 불안해했다. 그러자 옆자리 직원이 “인적사항을 컴퓨터로도 입력할 수 있다”고 담당 직원에게 알려줬다. 이 씨가 “서류를 떼러 직접 주민센터로 오는 것이 번거롭다”고 하자 다른 직원은 “장애인이 아닌 사람도 영문 서류를 떼려면 직접 와야 한다”고 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장애인 단체들이 온라인으로 영문 장애인증명서를 발급받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한 것은 약 3년 전인 2016년 4월이다. 한글 장애인증명서는 온라인으로 발급이 된다. 이로부터 1년 반가량 지난 2017년 9월에야 국민권익위원회가 복지부와 행정안전부에 “‘민원24’ 사이트(현재는 정부24)를 통해 발급하게 하라”고 권고했다. 어느 부처도 금방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해를 넘긴 지난해 5월 정부는 전자문서 규제혁신 방안에서 “2018년 말까지 온라인 발급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씨 같은 장애인이 영문 문서를 떼려면 관공서에 직접 가야 한다.

본보의 질의에 복지부는 “행안부에 시스템 보완을 요청했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행안부는 “올 상반기에 발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정부가 선정한 884건의 규제혁신 과제 중 225건(25.4%)은 이미 관료들이 공언한 약속 시한을 넘겼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 / 세종=이새샘 기자
#영문 장애인증명서#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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