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어도 손님은 단 한명… ‘찜통 더위’, 소상공인에 직격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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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사회]

31일 오후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는 폭염으로 장사를 접고 휴가를 간 점포들이 많고 그나마 문을 연 점포들은 손님이 없어 한적하다.
31일 오후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는 폭염으로 장사를 접고 휴가를 간 점포들이 많고 그나마 문을 연 점포들은 손님이 없어 한적하다.
‘찜통 더위’가 이어지던 7월 30일 오후 1시 반.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한 떡볶이 가게를 찾아가 ‘오늘 손님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사장 윤모 씨(53·여)는 손가락 하나를 폈다. 오전 11시에 가게 문을 열었지만 2시간 반 동안 온 손님이 1명뿐이라는 뜻이다. 그마저도 가게 옆 공무원학원에서 공부하는 단골이 “이모가 걱정된다”며 왔다고 한다.

윤 씨는 무더위 때문에 가게 손님은 줄어들고 물가는 오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폭염의 영향으로 떡볶이 재료인 양배추, 깻잎, 대파 모두 20% 이상 비싸졌다. 반면 뜨거운 떡볶이나 어묵을 사먹는 손님은 확 줄어들었다. 그는 “떡볶이를 사먹으면 얼음물을 제공하지만 장사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폭염에 그늘 깊어지는 소상공인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폭염에 서민들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들이 ‘폭염 물가’의 직격탄을 맞았다. 김대영 씨(46)가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의 과일소매점 판매대에는 과일이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 과일이 잘 자라지 않아 과일 값이 크게 올랐다. 비슷한 크기의 수박을 지난해보다 5000원 정도 비싸게 팔고 있다고 한다. 안 팔리다 보니 지난해에는 도매상에서 수박을 하루 40통 가져왔지만 올해는 15통만 가져온다. 김 씨는 “매출이 줄어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하는 구제성 씨(45)도 매출이 지난해 여름보다 20% 이상 떨어졌다. 구 씨는 “지난해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그늘에서 먹는 모습이 흔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예 사람들이 밖으로 안 나와서 이런 풍경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이경태 씨(51)의 매출도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더위 때문에 전통시장이 아닌 인근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이 늘어서다. 반면 생선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얼음비용은 더 많이 쓴다. 이 씨는 “지난해 여름엔 매일 5포대 가량 썼지만 올해는 10포대 이상 쓰는 날도 있다”고 했다.

● 최저임금, 전기료, 임대료 ‘삼중 폭탄’에 신음

서울 종로구에서 PC방을 10년째 운영 중인 손모 씨(62)는 올해가 가장 힘들다. 31일 오전 11시경 방학 기간인데도 전체 56대 컴퓨터 중 10대 앞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4대의 대형 에어컨은 24시간 가동 중이다. 누진세 때문에 평소보다 전기료가 40만 원 이상 더 나왔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같은 크기의 보통 가게보다 2배가 넘는 냉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에어컨을 끌 수 없다. 손 씨는 “에어컨 1대만 꺼도 덥다며 손님들이 나가버린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전기료가 늘고 임대료 부담도 커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야간에 에어컨을 꺼버리는 고시원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들도 있다. 대학생 안모 씨(23)가 살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은 누진세를 줄이기 위해 밤에는 환풍구를 통해 나오는 에어컨을 꺼버린다. 창문조차 없는 방에 사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방문을 열어놓고 자기도 한다. 안 씨는 “밤마다 땀이 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그저 참고 자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김민찬 인턴기자 서울대 미학과 졸업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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