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재밌는 역사]신사임당-정약용-김홍도가 그린 ‘부모의 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사임당의 ‘백로와 연꽃’
신사임당의 ‘백로와 연꽃’
우리 옛 그림에 사용하는 먹은 소나무, 오동나무 등을 태워 생긴 그을음에 아교와 향료를 반죽한 후 말려서 만듭니다. 먹은 검은색 한 가지이지만, 농담(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의 차이와 먹물의 번짐을 이용해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림을 먹물로만 그리면 수묵화, 그림을 그릴 때 약간의 채색을 사용하면 수묵담채화, 기본 그림에 다양한 채색을 사용하면 채색화라고 합니다.

우리 옛 그림 중에서 부모의 마음이 잘 표현된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신사임당의 그림으로 알려진 ‘백로와 연꽃’, 다산 정약용의 ‘매조도’, 김홍도의 ‘자리짜기’입니다.

신사임당의 ‘백로와 연꽃’

신사임당(1504∼1551)은 48년의 생애를 살면서 4남 3녀를 낳아 길렀습니다. 신사임당(본명 신인선)을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로만 기억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위대한 예술가였습니다. 16세기 신사임당의 ‘풀과 벌레’ 그림이 없다면 참 불행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조선 시대 여성 화가의 그림이니 얼마나 소중할까요?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백로와 연꽃’에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림에는 풀이 자라는 연못에 두 마리의 백로와 연꽃이 지고난 후 열리는 연밥이 그려져 있습니다. 백로는 고고한 선비를 상징합니다. 한 마리 백로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고, 또 한 마리 백로는 초연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두 마리 백로 중 어떤 백로를 더 닮았나요? 적극적이고 부지런한 성격을 가진 선비와 소극적이고 느긋하지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선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밥은 연자(蓮子)라고도 하고, 연밥의 씨앗 하나를 연과(蓮顆)라고 합니다. 동음인 연자(連子)와 연과(連科)는 ‘연속하여 자식을 얻음’과 ‘연속하여 소과와 대과에서 급제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그림 속에는 부모가 자녀의 공부를 응원하는 마음 혹은 결혼한 자식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백로 두 마리에 대해 신사임당이 남편과 자식의 과거급제를 기원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백로와 연꽃’을 보고 여학생들은 조금 실망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사임당이 아들만 응원하고 딸은 차별했을까요? 아닙니다. 신사임당의 첫째 딸은 이매창입니다. 이매창(1529∼1592)은 신사임당만큼 훌륭한 화가입니다. 신사임당이 딸을 훌륭한 화가로 키웠으니, 아들과 딸을 차별했다고 생각하면 오해이겠지요. 이매창은 수묵화조도(꽃과 새 그림)의 대가이며, 특히 ‘사계수묵화조도’는 뚜렷한 계절감을 잘 표현한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약용의 ‘매화와 참새’

정약용의 ‘매조도’
정약용의 ‘매조도’
다음은 정약용(1762∼1836)의 ‘매조도, 매화와 참새’입니다. 올해는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가 고향인 경기 양평군 양수리로 돌아온 지 꼭 2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경기 남양주시와 실학박물관은 해배(귀양에서 돌아옴) 200주년 행사를 다양하게 개최하고 있습니다.

정약용이 귀양간 지 10년째 되던 해에 아내는 살아서는 다시 못 볼 것 같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시를 짓고,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를 남편에게 보냈습니다. 정약용은 아내의 시와 빛바랜 붉은 치마를 받고, 이 치마를 여러 폭으로 마름질해 네 첩의 서첩을 만들어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보냈습니다. 어머니 치마에 아버지가 사랑을 담아 아들에게 쓴 편지는 그 내용만큼이나 사연이 처절하고 낭만적입니다.

더 낭만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21세 큰딸이 혼인한다는 소식을 들은 정약용은 서첩을 만들고 남은 천을 이용해 매화가지 위에 정겹게 앉은 두 마리 새를 그리고 그 아래에 시를 적어 딸에게 보냈습니다. 이 그림을 ‘매조도’라고 부릅니다. 그림 속 두 마리 새는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고, 풍성한 매화는 집안의 번창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와 헤어질 때 딸은 여덟 살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딸이 21세가 되어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그림과 시를 보낸 것입니다.

김홍도의 ‘자리짜기’
김홍도의 ‘자리짜기’
김홍도의 ‘자리짜기’

김홍도의 ‘자리짜기’는 ‘단원풍속도첩’ 중 17번째 그림입니다. 그림에는 사방관(양반이 실내에서 쓰는 관)을 쓰고 자리를 열심히 짜는 아버지, 무명을 짜기 위해 물레에서 실을 뽑는 어머니, 책장을 넘기며 공부하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눈으로 먼저 보십시오. 모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 결과 아버지는 자리를 꽤 많이 짰고, 어머니도 실을 제법 많이 뽑았습니다. 아들 역시 책을 중간 정도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림을 눈으로 보았다면 다음에는 그림 속의 소리를 귀로 들어 보십시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연신 내고, 아들은 고개를 흔들며 큰 소리로 글을 읽고 있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시나요. 마지막으로 마음으로 그림을 다시 보십시오. 아마 부모는 힘든 노동 속에서도 자식에 대한 희망과 기대 때문에 그런지 그리 고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방학 중 박물관에 가서 우리 옛 그림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품 하나라도 오랫동안 감상해 보십시오. 눈과 귀로 감상하고 마음으로 그림을 만나 보십시오. 참 즐거운 시간이 될 겁니다.

이환병 서울 용산고 교사
#신사임당#정약용#김홍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