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해온 성균관대]세종대왕-이이 등 수많은 인재 배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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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건학 619주년


성균관대는 올해로 건학 619주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은 1398년 한양 숭교방(崇敎坊·현 명륜동)에 성균관을 세우고 500여 년을 이어왔다.

고종 때는 황국답게 성균관을 ‘벽옹((벽,피)雍)’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국운이 풍전등화인 탓에 유야무야됐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 늑약 이후엔 경학원(經學院)으로 격하되는 수난을 당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봄 전국 유림대회가 열려 심산 김창숙 선생(1879∼1962)이 성균관장으로 추대됐고, 같은 해 9월 재단법인 성균관대를 구성해 학생을 뽑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선 성균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성균관대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조선 시대 성균관에선 전국에서 선발된 유생들이 유교 경전과 과거 과목을 커리큘럼으로 삼아 공부에 정진했다. 성적은 통(通), 약(略), 조(粗), 불(不)로 구분했다. 오늘날의 A, B, C, F학점과 같다.

정원은 200명이었지만 나중에 126명으로 조정했고 말기에는 100명으로 축소했다. 입학 연령은 15세 이상이었는데 50세 중년 입학생도 있었다. 600여 년의 기간동안 세종대왕, 정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단재 신채호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대학 인프라의 세 가지 요소로 강의실, 기숙사, 도서관이 꼽힌다. 성균관의 종합강의실인 명륜당(明倫堂)과 기숙사인 동재·서재는 1398년 7월 완공했지만 임진왜란으로 소실돼 1606년 중건돼 현재에 이른다. 도서관인 존경각(尊經閣)은 1475년(성종 7년) 건립 당시 수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명륜당 교정엔 1519년(중종 14년) 대사성(현 총장) 윤탁이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지금껏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대학의 효시는 1088년 건립한 이탈리아의 볼로냐대로 꼽는다. 옥스퍼드대(1249년·영국), 소르본대(1257년·프랑스), 케임브리지대(1284년·영국), 하이델베르그대(1386년·독일), 쾰른대(1388년·독일)가 그 뒤를 잇는다.

성균관대는 성균관이 일제강점기에 경학원으로 위상이 격하돼 10여 년간 교육 기능을 상실한 상흔이 있지만 연대기적으로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오래된 곳이라고 소개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성균관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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