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 청소년들의 꿈을 이뤄주는 ‘달서구 요술램프’

  • 동아일보

‘청소년 요술램프 통장’ 개설 사업… 후원자 늘며 1년간 9260만원 적립
수능준비 등 108명 소원 들어줘

19일 대구 달서구 청소년수련관 도서관에서 김재화 행복나눔센터 과장이 백가은 양(왼쪽)에게 1년간 매달 후원금을 저금한 요술램프 통장을 선물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19일 대구 달서구 청소년수련관 도서관에서 김재화 행복나눔센터 과장이 백가은 양(왼쪽)에게 1년간 매달 후원금을 저금한 요술램프 통장을 선물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제공
가정 형편이 어려운 백가은 양(18·대구 달서구)은 최근 큰 걱정거리를 덜었다. 지난해 중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수능 공부를 시작한 그는 책값과 인터넷 강의에 들어가는 돈이 부담스러웠지만 달서구와 후원자의 도움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백 양은 중학교 3학년 때 홀어머니가 뇌중풍으로 쓰러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간병에 매달렸다. 주변에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동 주민센터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재활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있다.

달서구와 대구은행은 지난해 3월 백 양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 요술램프 통장’을 만들었다. 동화 알라딘과 요술램프에 등장하는 요정 지니가 램프를 문지르면 소원을 들어주는 것에 착안해 이름을 붙었다.

후원자들이 매달 일정 금액을 저금하고 백 양이 용돈을 아껴서 보태면 1년 후 지급하는 방식이다. 대구은행은 연 4% 금리를 주는 ‘희망 더하기 적금’ 상품을 내놨다.

백 양은 최근 달서구 행복나눔센터에서 85만8000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수능 공부에 필요한 책을 사고 인터넷 강의도 수강할 계획이다. 의대에 진학하고 싶은 백 양은 “어머니가 응급실에 입원했을 때 정성껏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보면서 결심했다”며 “소중한 후원금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달서구의 청소년 요술램프 통장 개설 사업이 1년을 맞았다. 지난해 3월 시작해 최근 108명의 소원을 들어줬다.

매달 청소년이 2만 원 정도를, 기부자는 5만 원을 1년간 적립해 전체 금액은 9260여만 원이다.

청소년들이 손으로 쓴 편지로 전한 사연은 다양하다. 쇼트트랙 국가대표가 꿈인 박혜원 양(18)은 장애인 아버지가 혼자서 뒷바라지해주는 것이 부담스러워 선수 생활을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 다시 스케이트를 신었다. 초등학교 5학 때부터 쇼트트랙을 시작한 그는 경기에 나가면 메달을 따는 유망주다. 하지만 장비 구입 비용이 비싸고 전국 대회 때 필요한 숙박비 같은 경비가 걱정이었지만 이번에 후원금을 받고 희망에 부풀었다.

박 양은 “고생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지도해주신 코치 선생님께 국가대표가 돼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밖에 천문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약사가 되고 싶은 꿈뿐만 아니라 힘들게 일하며 가정을 돌보는 엄마의 고장 난 무선 청소기를 바꿔주고 싶다는 소원도 포함됐다.

달서구는 최근 올해 92명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요술램프 통장을 개설했다. 이달부터 저금해 1년 후 청소년들이 손편지를 제출하면 후원금을 지급한다.

동 주민센터를 통해 받은 사연은 웹툰(인터넷 만화) 작가용 컴퓨터 구입을 비롯해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와 가족여행, 중국 유학 준비 등 소중한 꿈들이다. 행복나눔센터(053-667-3671)는 연중 후원 접수를 받고 있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자립하도록 함께 돕는 기부문화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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